경고→실패→발사...한·중 협의 직전 노려
따라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재시도 자체는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이날을 택한 건 국내외적 정세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한의 ICBM 발사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윤 당선인과 시 주석 간 통화를 공식화한 지 반나절만에 이뤄졌다. 그간 중국의 주석이 한국의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한 전례는 없었다. 중국은 상대가 당선인 신분일 때는 축전을 보내 축하하고, 공식 통화는 대통령이 된 뒤 이뤄지곤 했다. 이번 통화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이를 의식했을 수 있다. 윤 당선인과 시 주석 간 통화는 이르면 25일 오후 이뤄질 예정인데, 당연히 논의에서 이날 북한의 ICBM 발사가 의제의 우선순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북한으로선 한·중 최고위급 간 의견 교환 과정에서 논의를 북한 문제로 잠식하고, 이를 통해 ICBM이라는 레드 라인을 과감히 넘은 데 대한 시 주석의 직접적 입장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최근 대(對) 러시아 제재에 이어 북핵 문제에서도 미국과 간극을 넓히는 추세다. 윤 당선인과 시 주석도 북핵 해법과 관련해 의견차를 보일 수 있다. 이럴 경우 북한은 자연스레 '한ㆍ중 갈라치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북한의 고강도 미사일 도발은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공약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의 강력한 근거도 될 수 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북한의 ICBM 발사 직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 없이 "관련된 각 측의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 공동으로 힘쓰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바이든, 기시다 자리 비운 틈
이날 백악관은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력 규탄한다"고 했고, 미 인도태평양사령부도 규탄 입장을 밝히며 "한ㆍ일 등 동맹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재중인 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북한의 ICBM 발사 당시 G7 정상회의 참석 차 벨기에로 가는 전용기 안에 있던 중에 북한이 쏜 ICBM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떨어졌다.
이날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는 기시다 총리가 주재하지 못하고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 등이 참석했다. 미ㆍ일 정상 모두 원래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본토를 위협당하고 EEZ가 뚫린 모양새가 된 것이다.
유럽서 정상들 모이기 직전 공략
지금은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에 몰두하고 있지만, 북핵 위협은 실제 나토와 G7 차원에서 그간 무게감 있게 다뤄온 안보 사안이기도 하다. 지난해 6월 열렸던 나토 정상회의와 G7 정상회의에서도 북핵 문제는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특히 나토 정상회의 공동성명으론 처음으로 북한이 크게 반발하는 비핵화 해법인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원칙이 담겼다. 이보다 앞선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포기'(CVIA)가 명시됐다. 이날 북한의 ICBM 발사 직후 열리는 나토ㆍG7ㆍ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도 각국은 북핵ㆍ미사일 규탄에 한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