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4일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전라남도 광양의 화물운송업체 부사장 A씨와 팀장 B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와 B씨는 2015년 1월 한 인터넷 언론사 기자가 회사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자 향응을 제공하면서 기자가 부적절한 요구를 하는 장면 등을 녹음·녹화하기 위해 식당 주인 몰래 음식점에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기자들의 협박을 대비하기 위한 행위였고, 범행 장소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장소인 데다 침입 방법도 경미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이들의 행위를 유죄로 판단하고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도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음식점에 들어갔다면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A씨 등이 식당 주인의 의사에 반해 식당에 침입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기자와의 대화를 녹음·녹화한 행위도 통신비밀보호법(1993년말 제정)을 위반해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통신비밀보호법상 제3자가 아닌 대화 당사자가 몰래 녹음하는 것은 허용된다. 이를 대화 상대방의 동의없이 공개하더라도 처벌되지 않는다.
2심 재판부는 "A씨 등이 식당 관리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기자와의 대화를 녹음·녹화했다고 하더라도 불법행위 등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방실에 들어간 것 자체가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이들에게 주거침입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려면 식당 주인의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돼야 하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수 의견 대법관(11명)들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에 영업주의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 방법으로 들어갔다면 사실상의 평온 상태가 침해됐다고 평가할 수 없다”며 “설령 영업주가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주거침입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별개 의견을 낸 김재형·안철상 대법관 역시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면서 '사실상의 평온상태 침해'로 침입 여부를 판단하더라도 '거주자에 의사에 반하는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전원합의체 선고로 1997년 대법원 판결 이후 형법 교과서에도 실린 ‘초원복집 사건’ 판례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대법원은 음식점에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들어간 경우는 영업주의 의사에 반한다고 봐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초원복집 사건' 등 같은 취지의 기존 판례들을 모두 변경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의 관점에서 침입의 의미와 판단 기준을 객관화해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되었는지에 따라 주거침입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초원복집 사건은
이 대화는 정주영 당시 후보가 이끄는 통일국민당 측이 도청장치로 확보한 대화 내용을 언론에 폭로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당시에는 대화 내용보다 도청 사건이 부각돼 오히려 보수층이 결집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당시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되기 전이어서 도청장치를 설치한 당 관계자들은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은 1997년 이들에게 유죄를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 하더라도,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것이라면 주거침입죄가 성립된다"며 "기관장들의 조찬모임에서의 대화내용을 도청하기 위한 장치를 설치할 목적으로 손님을 가장해 들어간 경우, 영업주가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