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소주병 투척男 "난 인혁당 피해자…사법살인 사과 안해 분노"

중앙일보

입력 2022.03.24 13:45

수정 2022.03.2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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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소주병을 던져 경찰에 체포된 남성이 자신은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의 피해자이며, “화가 나서 병을 던졌다”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17분쯤 대구 달성군 유가읍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인민혁명당에 가입해달라”는 문구가 달린 흰색 티셔츠를 입은 40대 후반의 남성이 인사말을 하던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소주병을 던졌다. 소주병은 박 전 대통령의 2m 정도 앞에 떨어졌으며, 경호원들이 즉시 박 전 대통령 앞을 막아섰다. 소주병에 맞거나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낮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마련된 사저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던 도중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던진 소주병이 깨지자 경호원들이 몰려들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 남성은 경찰에 체포된 후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이 ‘사법 살인’에 대해 사과하지 않아서 화가 났다”며 “집에서 마시던 소주병을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소주병 속에 있던 액체가 독극물인지 등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 남성을 인혁당 사건의 유족으로 보고 있다. 이 사건은 국내외 인권단체로부터 ‘사법 살인’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 정치적 판결이다. 1974년 박정희 정부 때 중앙정보부는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가 국가 전복을 기도했다”며 관련자 23명을 구속했다. 이 중 도예종씨 등 8명은 1975년 4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 사형 확정판결이 난 지 18시간 만에 사형당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인혁당 사건을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이라고 발표했다. 이 사건에 대한 조작 의혹을 국가 기관에 의해 처음 확인됐다. 이후 인혁당 사건이 고문 등에 의해 조작됐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에 따라 인혁당 사건 유족들은 2002년 12월 법원에 재심청구를 냈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낮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마련된 사저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던 도중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던진 소주병이 깨지자 경호원들이 몰려들고 있다. 송봉근 기자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후보로 나설 당시 인혁당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박 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첫 판결과 2007년 재심 판결을 병렬적으로 보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인혁당 사건 유족들은 크게 반발했다. 시민단체 등도 박 전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이상일 공동대변인을 통해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구경찰청은 이 남성을 특수상해미수 및 집시법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이날 오전 일찍부터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낮 12시15분쯤 박 전 대통령이 도착하자 인터뷰 장소 앞까지 접근한 후 박 전 대통령의 인사말 도중 뛰어들어 소주병을 던진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 남성을 즉시 제압했지만, 이 과정에서 취재진과 시민들이 넘어지기도 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사건 당시 바로 옆에 있던 경찰관이 소주병 투척 직전 이 남성의 팔을 잡아당겨 소주병이 멀리 날아가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달서경찰서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자세한 범행 동기 등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며 “소주병 안에 독극물 등이 들었는지 등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