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선거법상 기초의원은 득표수에 따라 한 선거구에서 2~4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다. 그러나 단서조항을 통해 4인 이상을 선출해야 하는 선거구는 광역의회 의결로 2인 이상 선거구로 쪼갤 수 있게 되어 있다. 그간 거대 양당이 이 조항을 이용해 2인 선거구를 일반화해 의석을 독과점해 왔다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에서 계속돼 왔다.
의원 정수 규정을 포함한 선거법 개정안이 확정돼야 광역의회가 선거구를 획정할 수 있다. 이미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시한(지난해 12월31일)을 훌쩍 넘긴 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시한 선거 준비를 위한 마지노선(지난 18일)까지 무너진 상태다.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소위 무산 직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국민의힘이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상정을 끝까지 반대해서 회의 개회를 못했다”며 “국민의힘이 아무리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민주당 의견을 상정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일방통행식 독주”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기초의원 선거구 확대는 지난해 정개특위 설치 당시 양당 원내대표 합의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맞서고 있다. 조해진 국민의힘 간사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이 선거구제 개편을 선거 전략 차원에서 던졌다는 변수 때문에 (기존 여·야 원내대표 합의와 달리) 새롭게 의제로 요구하고 있다”고 맞섰다.
정의당 “민주당이 ‘(선거구) 쪼개기를 안 한다’고 선언하라”
회의 무산에 따라 사면초가 상태에 빠진 건 172석 민주당 비대위(위원장 윤호중 원내대표)다. 당장 정의당은 이날 소위 회의장 앞에서 “국민통합 약속 이행은 기초 의회 중대선거구 확대로부터”라는 문구로 피케팅 시위를 벌였다. 배진교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도 “(기초의회가) 중대선거구제로 돼 있음에도 4인 선거구를 2인으로 쪼갤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실제적으로 모든 광역시·도의회가 쪼개기를 해온 것”이라며 “공직선거법 개정 전이라도 다수 지방의회를 차지하는 민주당이 ‘(선거구) 쪼개기를 안 하겠다’고 선언하라”고 요구했다.
초·재선 중심의 강경파들도 대국민 약속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8일 초선 의원 25인이 윤 위원장을 향해 정치개혁 추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날도 이탄희 의원 등 53인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양당이 기초의원을 독식하는 나눠먹기식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서 다양한 정치세력이 기초의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강행처리했다간 정신 못차렸다는 국민 분노 살 수도” 우려
윤호중 비대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정치개혁안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는 있지만 강행처리시의 후폭풍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개특위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다수 의석으로 강행 처리하는 것은 실제로 부담이 있다. 국민적 여론이 뒷받침된다면 모르겠지만, 선거제 개편은 본디 민생 이슈가 아니지 않나”며 곤혹스러움을 보였다. 또 다른 수도권 중진 의원도 “대선에서 막 패배한 시점에서 다수 의석으로 법안을 강제로 밀어붙이다간,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는 국민적 분노만 살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윤석열 당선인 역시 다당제 정치 실현을 주장한 안철수 대표와 손잡고 공동정부 운영을 논의하고 있다. 마땅히 그에 따른 후속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며 국민의힘을 압박했다. 그러나 전날 기자회견에선 “선거구 획정 문제는 게임의 룰에 관한 것이어서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게 맞다”는 단서를 붙였다.
다만 윤 위원장이 첫 리더십 시험대인 이번 선거법 개정 논의에서 강공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선임 과정에서 적잖았던 비토 여론을 의식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날 비대위 비공개회의 참석자에 따르면 윤 비대위원장은 “만약 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끝내 못하면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점한 광역의회에서 조례를 개정으로 선거구를 3~4인으로 고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