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협의에서 양측은 지금까지 논란의 대상이 됐던 한국은행 총재, 감사원 감사위원 등의 인사와 관련해 상당 부분 이견을 좁혔다.
특히 금융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은 총재의 경우 임명이 가능한 후보들 자체가 많지 않아 실제로 양측간 큰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 윤 당선인 측에선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ㆍ태평양 담당 국장이 차기 총재 후보로 많이 거론돼왔는데, 청와대도 이 국장에 대해선 별다른 이견을 표출하지 않았다고 양 측 관계자들이 전했다. 이 국장 외엔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 이승헌 부총재 등도 후보군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런 오해와 갈등이 추가 협의 과정에서 일부 해소되면서 양 측이 "어쨋든 대통령과 당선인이 빨리 만나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 접근을 이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기류에 촉매제 역할을 한 건 이날 오전 나온 청와대의 발표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박경미 대변인을 통해 “빠른 시일 내에 격의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갖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며 “청와대의 문은 늘 열려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회동을 위해) 무슨 조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조율이 필요없다’는 발언과 관련에 대해 ‘협의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건지, 협의를 빨리 해달라는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양쪽 다 해당될 것”이라고 답했다.
협상 상황을 잘 아는 인사는 “인사문제와 사면에 대한 양측의 갈등이 신·구 권력간 정면충돌이란 해석을 낳는데 대해 문 대통령이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안다"이라며 "이날 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문제가 된 주요 인사 협의와 관련해 '윤 당선인의 뜻을 존중해 인사를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의 입장이 공개된 직후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청와대에서의 만남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보기에 바람직한 결과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조속한 회동 제안과 별도로 청와대 참모들을 향해 “당선인 측의 공약이나 국정운영 방안에 대해 개별적 의사 표현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도 "당선인의 공약이나 정책,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SNS나 언론을 통해 의견을 언급하지 달라"고 주의를 줬다.
윤 당선인 측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자신의 SNS에 “여기(청와대)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 되나 묻고 싶다”는 글을 올린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탁 비서관은 대통령의 지시 이후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정치권에선 "이르면 19일 양측이 회동 일정을 동시에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청와대와 당선인측은 회동이 무산되는 상황에서도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으로 관련 사실을 알리며 보조를 맞춰왔다.
다만 지금까지 인사 추천과 관련한 언급을 자제해왔던 윤 당선인 측은 회동 가능성이 커진 이날 오후 “인수위 차원에서 어떠한 인사도 추천한 적이 없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정치권에선 이에 대해서도 “청와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당선인의 일정과 상황 등을 최대한 배려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며 “만약 당선인이 당장 회동을 진행하자고 할 경우 주말이라도 회동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도 “문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사전협의 마무리를 고집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당선인 대변인의 공식 반응에 이미 당선인의 긍정적 입장이 담긴 것으로 이해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