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6개월이 흘렀는데요, 그는 최근 통화에서 “이 계획을 모두 이뤘다”고 했습니다. 장학금을 주기 위해 장학재단을 만들어 우선 40억원을 넣었고, 또 내년부터 20년간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격년으로 예술상을 주기로 결정하고 후원(미화 100만 달러) 협약식을 마쳤다고요. 그러면서 그는 “이것은 시작이다. 내가 죽은 후에도 이 일들이 재단을 통해 계속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해외에선 더 바쁩니다. 오는 26일 도쿄화랑에서 그의 개인전이 시작되고, 4월 23일 개막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엔 베니스에서 미국의 일본계 조각거장 노구치 이사무(1904~1988) 등과 나란히 작품을 선보입니다. 이 전시는 박 화백의 해외 전속 갤러리 중 하나인 영국 화이트큐브가 앞장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4월 말 세계적인 예술서적 출판사 리졸리(Rizzoli)와 협업한 영문 모노그래프 박서보:『묘법(Park Seo-Bo: Ecriture)』가 발간되고, 이어 이탈리아 디자인 브랜드 알레시(ALESSI)에선 박 화백의 ‘묘법’ 시리즈를 입은 와인 오프너 2종이 곧 출시될 예정입니다.
박 화백에게 요즘은 하루하루가 봄날입니다. 하지만 그가 여든 중반이 될 때까지 이런 날이 오리라고 확신한 사람은 박 화백 본인 외에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딸 박승숙씨는 아버지의 삶을 정리한 책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에서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아버지가 갑자기 잘 팔리는 화가로 둔갑해 있었다”고 썼으니까요.
그는 작품이 잘 팔리지 않을 때조차도 “언젠가 세상이 나를 알아줄 것”이라 믿고, “양도 어마어마하게” 대작을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우직하게 한길만” 걷고, 지금은 자기 뜻을 하나씩 이뤄가는 그가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제 내가 지구에 살아 있을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무덤에 가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그의 말을 기억하며,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우직하게 살아가기’의 힘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