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한봉지 약만도 못한 글"…끝까지 떠난 딸 위한 시 썼다

중앙일보

입력 2022.03.14 10:02

수정 2022.03.14 10:10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유고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지난달 별세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유고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가 출간됐다. 2008년 낸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에 이은 두 번째 시집이다.
 
고인은 시를 통해 종교에 의탁하면서 얻은 영적 깨달음과 참회, 모든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감사와 응원, 자라나는 아이들의 순수한 희망을 그려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 이민아 목사를 향한 그리움도 시에 담겼다. 고인은 투병 중인 딸에게 "한 봉지 약만도 못한 글", "힘줄이 없는 시"라며 감추지 못하는 미안함을 시로 썼다.  
 
또 "내가 아무리 돈이 많이 생겨도 이제 너를 위해 아무것도 살 수 없다", "네가 맛있다고 하던 스시조의 전골도 봄이 올 때까지 방 안에서 걷겠다고 워킹머신 사달라고 하던 것도"라며 죽음의 명백함 앞에서는 돈도, 수사학도, 스마트폰도 무력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고인은 죽음이 "아름답고 찬란한 목숨의 부활"일지, "말도 안 되는 만우절의 거짓말"일지는 모른다고 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전화로 시집 서문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