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같은 초박빙의 상황이 실력과 비전 경쟁의 결과라기 보다는 비호감 경합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칼보다 더 날카로웠던 거친 네거티브 언어의 전쟁은 두 후보의 비호감도를 극대화했다. 익명을 원한 정치컨설턴트는 “서로의 비호감도를 높이려는 경쟁의 결과 윤 후보는 정권교체 여론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고, 이 후보는 현 정부에서 이반한 민심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친 언어로 차이를 드러내려 할수록 닮은 꼴이 선명해졌다. 유권자들은 누가 몸통이고 누가 깃털인지 알 수 없지만 이번 대선이 공교롭게도 ‘대장동’과 ‘김만배’의 그림자가 드리운 두 사람의 대결임을 알게 됐다. 두 후보의 부인이 차례로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전대미문의 사건마저 닮은꼴이었다. 배우자를 향한 난타전은 한 사람에게는 ‘무속’‘주가조작’, 다른 한 사람에게는 ‘초밥’‘법인카드’ 등의 쉽게 사라지지 않을 연관 검색어를 선사했다. 결국 '양 김'으로 불렸던 두 배우자들은 공식 선거 운동에 얼굴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남은 63.07%(사전투표율 36.93%)의 유권자들 중 9일 “내 표가 정답”이라는 믿음으로 투표장으로 향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차마 나를 찍지 못한 반대편 절반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당선 뒤 내놓을 위기 극복 청사진도, 각종 정책 비전도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깨달음의 발로일까. 선거운동 내내 대한민국의 현재를 ‘위기’라고 진단한 두 후보는 마지막날 모두 “국민통합”을 외쳤다. 이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명 정부’라는 표현은 ‘국민통합정부’보다 앞설 수 없다”며 “‘국민통합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당선 즉시 국민통합정부 구성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부산 유세에서 “민주당의 양식있는 정치인들과도 협치하고 국민의당과도 신속히 합당해 우리 당의 가치와 목표의 외연을 넓히고 더 많은 국민들의 의견을 소중히 받들어 국민통합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민통합’을 기대할 실마리가 있다면 두 후보가 여의도 정치에 물들지 않은 소속 정당의 비주류 출신이라는 점이다. 86운동권 그룹도 친문 그룹도 아닌 이 후보는 정치의 변방 경기도에서 자수성가했다. 친이명박계도 친박근혜계도 아닌 윤 후보는 검찰총장 자리에서 현 정부와 맞서며 몸집을 불렸다.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두 사람 중 누구라도 차기 정부의 성공을 도모하려면 협치나 정치적 연합, 이를 위한 권력 분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권력분산을 공약한 윤 후보와 선거구제 개편을 주장한 안철수 대표의 단일화로 대선 뒤 정치개혁 의제 부상은 시간문제”(국민의힘 초선 의원)라거나 “문재인 정부와 색깔이 다른 이재명 정부 구성엔 진영 초월의 통합 정부가 필수 요소”(민주당 재선 의원)라는 기대섞인 목소리가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