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수출 중단되면 배럴당 200달러
국제 유가가 로켓을 단 건 미국 등 서방이 강력한 에너지 제재 카드인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꺼낼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유럽 동맹국들과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의 러시아 퇴출이란 '금융핵폭탄'을 누른 서방이 러시아의 목을 제대로 죌 태세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잇달아 유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러시아의 원유 수입이 차단되면 하루 500만 배럴 이상의 공급이 줄면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뛸 수 있다고 전망했다. JP모건은 연말까지 원유 공급 차질이 빚어지면 국제 유가(브렌트유 기준)가 배럴당 최고 185달러까지 뛸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조사업체인 IHS마킷 대니얼 예긴 부회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각종 제재로 인해) 원유와 관련해 공급, 물류, 결제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며 "1970년대 (오일쇼크) 급의 위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3차 오일쇼크'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계는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를 경험했다. 1차 오일쇼크는 '4차 중동전쟁'이 터진 뒤 1973년 아랍 산유국이 이스라엘을 돕는 국가에 석유 수출을 금지하고, 석유 가격을 4배가량 인상하면서 세계 경제가 혼란에 빠졌다. 1978년 ‘이슬람 혁명’ 여파로 이란의 석유 수출이 전면 중단되면서 유가가 폭등한 게 2차 오일쇼크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악몽 같은 시나리오”
이미 조짐은 분명하다. 지정학적 위기로 원자재 시장은 폭풍의 한가운데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이후 7거래일간 밀 가격은 전쟁 여파로 29.3% 뛰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의 약 29%를 차지한다. 같은 기간 니켈(14.15%)과 철광석(11.28%) 등 광물 몸값도 10% 넘게 뛰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대체투자 자산운용사 누빈의 앤더스 페르손 투자책임자는 ”브렌트유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오르면 유럽연합(EU)의 경제성장률은 2%포인트 낮아지고, 미국의 성장률은 1%포인트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BoA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며 “(금융사 이코노미스트) 설문 조사에서 12개월 내 스태그플레이션 닥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지난달 22%에서 30%로 높아졌다”고 했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기고문에서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중앙은행에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중앙은행은) 긴축을 가속해야 하지만, 1970년대처럼 경기침체를 고려해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계에 불어닥친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글로벌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유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이할 수 있다”며 “원자재를 대거 수입하는 한국은 특히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