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러들 월평균200 버는데"…현대차에 분노한 중고차 업계

중앙일보

입력 2022.03.07 18:11

수정 2022.03.0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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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중고차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사진은 서울 성동구 장안평 중고차 매매시장. [뉴스1]

 
현대자동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메르세데스-벤츠·BMW 등 일부 수입차 브랜드처럼 ‘인증중고차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중고차 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현대차는 7일 중고차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구체적인 사업 방향을 공개했다. 우선 인증중고차(CPO·Certified Pre-Owned) 사업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인증중고차는 차량 제조사가 직접 중고차를 매입해 정밀한 검사·수리를 거쳐 품질을 인증한 뒤 판매하는 차량이다. 국내에선 벤츠·BMW·폭스바겐 등이 수입차 브랜드가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국내 완성차 업체가 인증중고차 사업에 뛰어드는 건 현대차가 처음이다.  
 

현대차가 가상으로 마련하는 온라인 중고차 전시장. [사진 현대차]

 
현대차는 당장은 차량을 구매한 지 5년 이내이면서 주행거리가 10만㎞ 이내인 자사 브랜드 차량만 매입한다는 방침이다. 매입한 중고차는 엔진·차량내외관·차량하부·침수여부 등 200여 개 항목의 품질 검사를 통과한 차량만 판매한다. 이를 위해 ‘인증중고차 전용 하이테크센터’를 구축하고 중고차 인증체계(매집점검-정밀진단-인증검사)를 마련해 차량 품질을 검사할 계획이다. 중고차 관련 통합 정보 포털도 운영한다. 중고차 성능·상태와 가격, 실거래 현황 등을 알려주는 사이트다.
 
그동안 중고차 시장은 판매자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으로 ‘깜깜이 장사’라는 논란이 있어왔다. 판매자가 차량 주행거리·성능 등 주요 정보를 독점하는 구조라서다. 때문에 각종 허위·미끼 매물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국내 주요 직영 중고차 기업. 그래픽 차준홍 기자

 
현대차 중고차 통합 포털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판매자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 해소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다. 중고차 포털은 중고차의 적정한 가격 산정이나 허위·미끼 매물 선별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또 중고차 시장의 현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중고차 가치지수와 실거래 대수 통계, 모델별 가격 정보를 제공한다. 중고차 성능·상태는 국토교통부와 보험개발원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중고차의 사고 여부와 보험 수리 이력, 침수 여부, 결함·리콜 명세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신차와 연계한 마케팅도 선보인다. 소비자가 타던 차량을 회사가 매입하고, 신차 구매 때 할인을 해주는 보상판매 프로그램인 ‘트레이드 인(Trade-in)’이 대표적이다. 현대차 측은 “이를 통해 차량 성능·상태와 이력 정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고, 신차를 구매하는 사람은 추후 중고차 처리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앞에서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원들이 현대기아차 중고차시장 진출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00여개 품질검사…비대면 원스톱 쇼핑   

하지만 현대차의 중고차 사업 진출에 대해 중고차 업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지해성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사무국장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전국 자동차 딜러 5만여 명의 월평균 수익은 현재 150만~200만원에 불과하다”며 “현대차가 진입하면 거래량 급감으로 딜러 수입은 20~30%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중고차 업계와 함께 마련한 상생 협의를 준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특정 중고차(5년·10만㎞)만 제한적으로 거래하고, 이외의 물량은 기존 업계에 공급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시장 점유율도 스스로 제한한다. 현대차의 인증중고차가 중고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2.5%(2022년)~5.1%(2024년)를 넘으면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해성 사무국장은 “상생방안은 아직 ‘협의’ 중인 사안이지 서로 ‘합의’한 내용이 아니다”며 “특히 5년 이상 10만㎞ 이내의 ‘양질’의 중고차를 모두 독식하겠다는 것이어서 기존 중소 자영업자 중심의 딜러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의 중고차 사업 진출 관련 논의 연혁. 그래픽 차준홍 기자

 
현대차가 이 같은 반발에도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그만큼 파이가 커서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고차 등록 대수는 394만 대로 신차(173만 대)의 두 배가 넘는다. 연간 중고차 거래액은 25조~30조원으로 추산된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혼탁한 국내 중고차 시장으로 인해 소비자가 피해가 커지는 현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일단 현대차의 인증중고차 사업을 지켜보다가 추후 문제가 발생하면 보완하는 방식으로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중소벤처기업부는 대선 이후 이달 중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논의하는 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정부가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 현대차는 시장에 진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