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노트북을 열며] 숨은 가계부채, 850조 전월세 보증금

중앙일보

입력 2022.03.02 00:22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전세·준전세 임대차 보증금은 일종의 숨어있는 부채다. 임대차 계약이 끝나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돈이라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학계·금융권 일각에선 가계부채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이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주택 전월세 보증금 규모 추정 및 잠재위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세부채(임대차 보증금) 규모는 850조5783억원으로 추산된다. 아파트가 613조6363억원(72.1%)으로 가장 많다. 이는 2018년 710조2736억원, 2019년 782조6080억원 등으로 해마다 느는 추세다.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전셋값까지 덩달아 오른 만큼 전세부채 규모는 더 커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준전세는 전체 세입가구의 90%를 차지한다.
 
임대차 보증금을 가계부채에 포함하면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신용(부채) 잔액은 2019년 말 1600조6007억원에서 2020년 1727조9160억원으로 불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규모는 83.2%에서 89.4%로 올라갔다. 여기에 임대차 보증금까지 포함한 가계부채 규모는 2019년 말 2383조2087억원, 2020년 말 2578조4943억원으로 늘면서 GDP 대비 규모도 각각 123.8%·133.4%까지 치솟는다.
 

연도별 임대차 보증금 규모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는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해 2분기 말 기준으로 43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GDP 비중 1위인 스위스(129.2%)와 비슷한 수치다. BIS 기준 가계부채는 비영리단체를 포함한 것이라 한국은행 통계보다 크게 나타나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국이 1위다.


최근 몇 년 새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매우 빠르다. 부동산 가격이 가계부채 폭증의 ‘도화선’이라는 점에서 임대차 보증금 규모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부동산 경기가 꺾이고 전셋값이 하락하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 집을 팔아도 보증금에 모자란 ‘깡통전세’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기관인 소주성특위가 연구를 발주한 배경이기도 하다. 보증금까지 포함했을 때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 등을 알아야 주택 시장과 경제 전반에 미칠 수 있는 잠재 위험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김세직 교수의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거시경제나 부동산 시장에 큰 경제 충격이 올 경우 임대차 보증금이 실물 및 금융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채널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금융권 중심의 가계부채 지표 관리 정책만으로는 국가의 총 가계부채 관리 정책이 부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