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수사 단서인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 일부 내용의 사실관계에 오류가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녹취록의 신빙성을 의심할만한 정황이 확인되면서다.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 등 대장동 민간 사업자들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대화 내용 등이 담긴 이 녹취록엔 ‘50억 클럽’과 “(로비를 받은) 그 분” 등이 언급돼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상대 후보 공격용으로 인용되고 있다.
검찰 "김만배 아파트에 대법관 딸 거주 안 해"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해 2월 4일 김만배씨는 정 회계사와 대화를 나누다 조재연 대법관을 “그 분”이라고 지칭했다. 김씨는 “수원 OO(아파트명) OOO호에 대법관님 따님이 살아”라고 말하며 대화 앞뒤로 조 대법관을 언급했다고 한다. 해당 아파트는 2014년부터 김씨 가족 명의로 돼있다가 지난해 7월 김 씨 본인이 전입신고한 곳이다.
검찰은 이 대화 내용에 기초해 수사에 나섰지만, 사실이 아닌 거로 결론 내렸다. 아파트 현장조사 등을 거쳐 김씨 가족이 2014년 취득 직후부터 실거주한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녹취록 속 김씨 발언이 거짓으로 판명된 것이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수사팀이 계속 확인했던 내용이고, 해당 의혹은 사실이 아닌 거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앞서 조 대법관도 자신의 이름이 대선 TV토론에서 공개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녹취록에서 '그분'으로 지목된 조재연 대법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의혹을 부인했다. 2022.2.23 [중앙포토]
대장동 특혜 의혹 수사에서 거의 유일한 물증인 녹취록의 신빙성이 흔들리며 여기에 언급된 주요 의혹을 확인해 수사를 이어온 검찰 입장에서도 작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검찰은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본부장과 김만배씨, 남욱 변호사, 정민용 변호사 등 핵심 3인방을 기소하면서 녹취록을 증거로 제시한 상태다. 또 곽상도 전 의원, 권순일 전 대법관 등 6명의 ‘50억 클럽’ 의혹도 녹취록이 근거가 됐다. 이에 따라, 이미 재판에 넘긴 곽 전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5명에 대한 수사도 난항이 예상된다.
발언 당사자인 김씨 또한 “술자리 등에서 과장과 허세가 섞여 한 말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김씨 측 변호인은 “검찰이 지난해 수사 초기에 녹취록에 나온 내용 전반을 조사해서 별다른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녹취록 인용해 "이재명 게이트" vs "윤석열 게이트"
녹취록에 나온 내용으로 상대 당 대선 후보를 대장동 의혹과 결부시키는 데 주력해온 정치권의 주장도 힘이 빠질 전망이다. 그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인터뷰 등에서 “김만배가 ‘윤석열은 내 카드 하나면 죽는다, 영장 나오면 죽는다'고 했다. 대장동 의혹은 ‘윤석열 게이트’”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김만배 녹취록에 ‘이재명 게이트’라는 표현이 등장한다”고 역공했다.
검찰이 확보한 녹취록은 정 회계사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김만배씨, 남욱 변호사와의 대화 130여건을 녹음한 것으로 모두 수천페이지(10기가 바이트) 분량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녹취록에 대한 검증이 덜 끝난 상태로 향후에도 정치권의 공방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여야가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각자 입맛에 맞는 일부 문구와 표현을 떼어내 선거전에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철웅 기자 kim.chulwo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