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윤선거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인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효종은 북벌정책을 들고 나왔다. 힘을 키워 청나라에 복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대학자이던 송시열(1607~1689)도 북벌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그는 북벌론에 찬성하면서도 양반과 지주의 기득권을 지키는 방안을 모색했다고 한다.
[e즐펀한 토크] 김방현의 개갈난 충청뉴스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 문중 갈등 '회니시비'
이날 일을 계기로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 문중은 대립의 길로 들어섰다. 집권 세력이었던 서인은 노론(송시열)과 소론(윤증)으로 갈려 싸웠다. 이를 ‘회니시비(懷尼是非)’ 라 부른다. ‘회’는 우암 송시열의 터전이었던 대전의 회덕이며, ‘니’는 명재 윤증의 터전이었던 충남 논산시 니성(현재 노성면)을 가리킨다.
회덕을 중심으로 대전에는 은진 송씨 15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논산시 노성면과 공주시 탄천면은 파평 윤씨 집성촌이다. 파평 윤씨 문중 후손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이곳을 몇차례 방문한 바 있다.
지난 16일 양 문중 만남…350년 만의 화해
이 자리에는 기호학파 예학(禮學)의 본산인 사계 김장생(1548~1631)의 후손도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우암 송시열은 광산 김씨인 김장생의 제자이고, 윤증은 송시열의 제자였다. 남간사는 송시열을 모신 사당이다.
주요 참석자는 송희원 은진 송씨 파유사회 의장, 송영문 우암 종친회 공사원, 윤철병 전 종친회장, 윤봉길 의사 손녀인 윤주경 국민의힘 국회의원 등이다. 또 대전 동구가 지역구인 이장우 전 국회의원, 박성효 전 대전시장, 김장생 후손인 김연수 중구의회 의장 등 정치권 인사들도 함께했다.
“양 문중, 대표 학자는 스승과 제자 사이”
은진 송씨 유림 모임 사무국장인 송인승씨는 “양 문중 대표 학자가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만큼 양 문중이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하지만 회니시비 이후 양 문중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려 결혼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2020년 유성룡과 김성일 문중 화합도 영향
이들 유림은 1620년부터 갈등했다. 퇴계 이황의 위패를 모시는 호계서원 사당에 퇴계의 제자인 서애 류성룡(1542~1607)과 학봉 김성일(1538~93) 중 누구의 위패를 윗자리인 퇴계 왼쪽에 놓는 게 맞는지를 두고 갈등했다. 서애파와 학봉파 간 서로 말도 잘 걸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후손들은 이를 ‘병호시비(屛虎是非)’라 불렀다. 오래전부터 서애파를 ‘병’파, 학봉파를 ‘호’파라고 불렀는데, 병호시비는 이들 간의 다툼이라는 의미다. 윤철병 전 종친회장은 “서애와 학봉 후손도 화해하는 마당에 우리 문중이 못 본체 해서야 되겠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고 했다.
윤주경 의원 "대한민국 도약에 힘을 보태달라"
윤주경 의원은 “새로운 도약의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에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 화해의 장이 마련된 것은 의미있다”며 며 “양 문중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데 힘을 모아 달라“고 말했다.
돈암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와 함께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명재고택(중요민속문화재 190호)은 1709년 윤증 제자들이 지었다. 명재고택에서는 고택 스테이를 할 수 있다. 고택은 아직도 남아있는 수백개의 장독대로 유명하다. 명재고택 초가집 위쪽에는 작은 책방인 노서서재가 있다.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돈암서원은 김장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그의 제자들이 김장생의 학덕을 잇기 위해 돈암서원을 1634년 건립했다. 이곳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