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가치 좀 올려라…불붙는 ‘K 주주운동’

중앙일보

입력 2022.02.14 00:04

수정 2022.02.1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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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개미운동’을 이끌었던 개인투자자가 적극적으로 권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막자는 이른바 ‘K-주주운동’이다. 기업의 물적 분할 이슈로 주주가치가 훼손된 것이 계기가 됐다. 자산운용사들도 3월 정기 주주총회(주총)를 앞두고 소액주주의 행보에 ‘주주 행동’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주주 행동은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주주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신호탄을 쏘아 올린 건 트러스톤자산운용이다. 지난해 12월 23일 언더웨어 전문회사 BYC에 주주서한을 보냈다. 합리적인 배당정책 수립과 부동산 자산의 효율적 활용 등 5가지 요구를 담았다. 지난 9일에는 VIP자산운용이 한라홀딩스에 “자사주 매입·소각 등 명확한 중기 주주환원정책을 수립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시장에선 3월 정기 주총 전까지 더 많은 주주 행동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11일 디스플레이 생산업체인 토비스에 주주명부공개를 요청하고 나선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의 김형균 상무는 “3월 주총 전까지 4개 이상 기업에 추가로 주주 행동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주주행동 사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최근 자산운용사의 주주 행동이 주목받는 건 소액주주와 함께해서다. 안다자산운용은 최근 SK바이오사이언스의 물적 분할 및 상장으로 인한 SK케미칼의 주주가치 훼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해결책으로 배당 정책 등을 통한 주주 가치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공감한 SK케미칼 소액주주연대는 의결권을 모아 안다자산운용에 위임하기로 했다. 안다자산운용 측은 “이사회 등이 다수의 소액주주가 아닌 지배주주의 편에서 경영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주가 저평가 등 디스카운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소액 주주를 위한 의사결정이 곧 기업의 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 저평가 요인이 해소되면 기업의 주가가 오르면서 기업 가치가 오르고 운용사는 실적을, 주주는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BYC에 주주서한을 보낸 이성원 트러스톤자산운용 부사장은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저평가된 기업이 많은 만큼 운용사 입장에서는 이런 기업을 발굴해 성과를 내는 게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주주 행동은 경영권을 목적으로 하거나 대주주와 정면 대결을 불사한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와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운용사의 주주 행동은 결국 조언가로서 기업의 가치가 최대한 발현되도록 도와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에도 개미들이 나서고 있다. 개인투자자 중심의 ‘세이브 코스피’ 운동이다. 최근 문제가 된 물적 분할을 계기로 한국 주식시장에 필요한 제도 개선 사안을 모아 ‘제도개혁 청원’을 만들고 있다. 향후 이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리고, 대선 후보에게 전달해 입법을 끌어내는 것이 목표다. 지난 4일 시작한 이 캠페인에는 1만3000명이 방문했고, 약 2500명이 의견을 남겼다.
 
이 운동을 이끄는 이효석 전 SK증권 자산전략팀장은 “동학개미운동으로 개인 투자자의 증시 참여는 높아졌지만, 그에 비해 소액주주의 권리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후진적 경영 관행과 제도적 부조리 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들어 투자자 피해로 이어지는 만큼 이를 알리고 개선해 나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소액주주 목소리가 커지며 실제 변화로 이어지는 모습도 감지된다. 최근 계열사 경영진의 스톡옵션 행사 등으로 주주들의 지탄을 받은 카카오가 대표이다. 남궁훈 카카오 신임 대표 내정자는 “주가가 15만원으로 오를 때까지 최저임금만 받겠다”고 밝혔다.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도 함께 발표했다. CJ ENM도 최근 물적 분할 후 동시 상장이 주주들의 비판을 받자 물적 분할을 재검토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