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올림픽 쇼트트랙 편파판정 논란
1948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전문의 첫 문장이다. 인류가 2차 세계대전 중 자행된 야만적 범죄를 반성하기 위해 만든 문서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서술했다.
이번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종목에서 불거진 ‘편파 판정’ 논란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과 연결한다면 너무 거창해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이번 편파 판정 논란에서 한국 국민, 특히 인권 감수성이 예민한 2030 세대가 크게 분노하는 건 단순히 애국심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 선수들뿐 아니라 동등한 자격의 각국 선수들이 편파 판정으로 보이는 상황에 피해받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다. 그 기저에 깔린 건 시대의 화두인 공정이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한 분노다.
이는 권리의 보편성과 직결된다. 세계인권선언의 대부분 조항에서 주어는 “모든 사람은”으로 돼 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이런 기본적 권리의 보편성을 정립하는 게 세계인권선언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선수들 중 일부의 보편적 권리가 침해당하는 장면이었다. 누구는 손도 안 댔는데 실격이고, 누구는 두 손을 써서 밀쳐대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 인권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 있다. 보편적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성의 파괴가 주는 불편함은 나도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다.
조금 각도를 바꿔보자. 올림픽이라는 축제 이면에 있는 보편적 권리 침해다. 애초에 미국 주도로 이뤄진 ‘외교적 보이콧’(선수단만 참가하고 정부 대표단은 보내지 않음)의 원인이 됐던 신장 위구르족 인권 탄압 문제다.
중국 정부는 부정하지만, 합리적 의심은 끊이지 않는다. 중국이 재교육 시설이라고 주장하는 수용소에서는 성폭행을 비롯해 고문이 자행된다고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등은 증언을 바탕으로 지적한다. 구타와 전기 충격, 고통스러운 자세 유지, 수면 박탈 등이 보고됐다. 위구르족의 출산율과 인구 밀도를 낮추기 위해 불임 시술과 낙태를 강요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이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게 아쉬운 건 불참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중국 내 인권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공식 입장조차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정부가 중국 인권 문제에 공개적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이유에 대해 “한‧중 간 특수관계에 비춰 우리 정부는 중국 내부 문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계속 자제해 왔다”(지난해 5월 브리핑)고 말했다.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 아무 거리낌 없이 ‘특수관계’를 이유로 댔다.
보편성의 파괴가 주는 공포는 나도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다. 중국에서 이뤄지는 인권 침해의 피해자가 한국인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너무 먼, 황당한 이야기 같은가? 아니다.
지난해 9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국 내에 수감돼 있는 한국인들로부터 “교도관이 전기봉을 양쪽 다리에 사용해 졸도했다” 등의 심각한 증언이 나왔다.
이에 대한 중국 측의 입장이 더 가관이었다. 규정 자체가 수형자에 대한 전기곤봉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편적 권리 보호에 대한 자의적 해석의 결과다.
베이징 올림픽 편파 판정 논란에 대한 분노는 곧 식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보편적 권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 이런 보편적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누구나 당할 수 있는 공포스러운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