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고객을 가족같이’라는 경영 철학을 강조했던 구자홍 LG니꼬동제련 회장이 11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77세.
고인은 평소 “가족을 대하는 마음, 즉 사랑과 존중으로 주변 사람과 고객을 생각하고 교감하는 것이 ‘고객을 가족같이’라는 이념과 의미가 통한다”고 강조해왔다.
구자홍 회장은 1973년 반도상사(현 LX인터내셔널) 수입과로 입사해 반도상사 해외사업본부에서 근무했다. LG전자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하며, 글로벌 성장과 노사 화합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LG전자 대표시절엔 남다른 선구안으로 ‘디지털 전도사’를 자처했다. 그는 한국 전자산업이 선진국을 앞설 유일한 기회가 디지털 분야에서 나온다고 봤다.
2003년 LS그룹이 LG그룹에서 분리된 후, 2004년부터 2012년까지 LS그룹 초대 회장으로 9년 동안 그룹 성장을 주도했다.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해외 진출, 연구·개발(R&D) 강화를 추진해 LS를 재계 13위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창립 당시 7조원이던 그룹의 매출은 30조원으로 4배 이상 성장했다.
그는 2012년 올해의 경영자 대상을 받은 뒤 “대나무가 꺾이지 않는 것은 마디가 있기 때문”이라며 “각 마디를 이루고 있는 전 세계 LS그룹 계열사가 본격적인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휘자’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고인은 ‘아름다운 경영 승계’의 모델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인은 사촌 동생인 구자열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순조롭게 승계하며 ‘사촌경영’의 전통을 세웠다. 회장직 이양을 결정할 당시 고인은 “LS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만큼 더 역동적이고 능력 있는 경영인이 제2의 도약을 이뤄야 할 때”라며 “구자열 회장이 최적임자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소문난 효자로도 잘 알려졌다. 고인은 부모님(고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부부)이 살아 계실 때 같은 빌라 위아래층에 살면서 봉양했다. 여섯 남매 부부가 두 달에 한 번씩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했다. 이 모임은 한 사람당 식사비가 3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규칙 때문에 ‘3만냥 클럽’으로 불렸다.
대외활동으로 한국전자산업진흥회 회장과 한국비철금속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금탑산업훈장, 한국CEO대상, 금속재료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2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월 15일 오전 8시에 진행될 예정이며 장지는 경기도 광주공원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