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021년 5월 5일엔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외상 간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 이에 모테기 외상은 한국 법원의 위안부·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언급하며 한국의 해결책 제시를 요구했다. 서로 각자의 이야기만 쏟아낸 채 회담은 20분 만에 끝났다.
#3. 정 장관과 모테기 외상은 2021년 9월 23일 미국 뉴욕에서 재회했다. 한국 외교부는 “현안 해결 및 관계 발전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도 말 그대로 의견만 나눴다. 정 장관은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 측 입장을 강조했고, 수출규제 철회를 요구했다. 외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모테기 외상은 “일본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고 한다. 서로의 이견이 평행선을 달렸다는 의미다.
회담 때마다 터지는 악재…이번엔 '사도광산'
다만 양 장관의 회담이 이뤄진다 해도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일본이 지난달 28일 조선인 강제노역 피해 현장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로 하며 한·일 간 상호 악감정이 부풀어 있어서다. 실제 정 장관은 앞서 지난 3일 하야시 외무상과 첫 통화를 가졌지만, 사도광산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며 정작 핵심 의제였던 북한의 탄도미사일 대응 논의는 뒷전으로 밀린 분위기다.
첫 회담부터 '사도광산 충돌' 우려
양 장관은 그간 공식 회담은 물론 제대로 된 소통의 기회조차 갖지 않으며 상호 신뢰 관계가 조성돼 있지 않단 점도 문제다. 하야시 외무상은 지난해 11월 취임 후 곧장 미국·중국·인도 등 주요국 카운터파트와 취임 인사를 겸한 전화 통화를 가졌다. 하지만 통화 명단에 정 장관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일 외교장관 간 통화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하야시 외교의 우선순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외교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있다는 의미였다.
중재 나선 美…관계 개선은 난망
한·미·일 3국 공조는 특히 미국이 추구하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대북 공조의 핵심축이다. 한·일 갈등이 한·미·일 공조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재차 한·일 간 중재자 역할을 자처할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월 출범 이후 줄곧 한·일 관계을 독려해왔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특히 일본은 오는 3월 9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임기 말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나설 유인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로, 임기 말 한·일 관계 개선 움직임이 자칫 대일 저자세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미국은 한·일 관계 개선이 한·미·일 공조의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하겠지만, 현 상황에선 한·일 모두 양국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일 간 누적된 현안과 악재 관련해서도 역시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야 본격적인 협상과 논의가 시작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