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올림픽 정신과 감동 실종된 베이징 동계대회

중앙일보

입력 2022.02.09 00:10

수정 2022.02.09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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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중국 베이징 수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에서 황대헌이 질주하고 있다. 황대헌은 레인 변경이 늦었다는 이유로 실격됐다. [뉴스1]

편파판정과 황제의전 … 반중정서 폭발

이대로 가면 사상 최악 오명 남길 것

올림픽 선수들이 4년간 갈고닦은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것은 공정한 판정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과 참가자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기회, 그것이야말로 스포츠의 미덕이고 올림픽 감동의 원천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겨울올림픽에서는 개막 초반부터 올림픽 정신이 훼손되는 장면이 속출하고 있다. 엊그제 펼쳐진 쇼트트랙 경기는 여태껏 보지 못한 편파 판정의 연속이었다. 그 결과 예선과 준결승, 결승에 이르기까지 단 한 차례도 선두로 골인하지 못한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더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던 선수들에게는 줄줄이 실격이 선언됐다. 편파 판정의 수혜자는 개최국 중국 선수들이었다. 이를 심판진의 오심이 겹친 우연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이쯤 되면 한국, 헝가리 등 다른 나라 선수들은 ‘중국 우승’이란 예정된 결론을 위해 들러리를 선 것과 다를 바 없다. “올림픽이 아니라 중국 체육대회”란 비아냥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판정에 깨끗이 승복한 패자가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비록 졌지만 멋진 승부를 펼친 패자에게 관객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것은 올림픽이 보여주는 또 다른 감동이다.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선 그런 감동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판정 시비뿐 아니라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유난스레 잡음이 많다. 미숙한 경기 운영이나 과도한 통제 등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올림픽을 이용하려는 중국 공산당 정권의 의도가 드러난 사례도 있다. 지난 5일 시진핑 주석이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정상급 외빈을 위해 마련한 리셉션의 의전 논란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극심한 반중 감정을 불러일으킨 ‘한복 소동’은 55개 소수민족의 문화를 표현한 것이란 변명이라도 가능하지만, 마치 황제와 조공 사절의 접견을 연상케 하는 듯한 리셉션 좌석 배치는 중화권 내에서조차 비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것이다.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은 나라의 사절들을 친중(親中) 진영으로 묶어 과시해 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참석자 중에는 박병석 국회의장도 포함돼 있었다. 정부 대표인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별도로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까지 개막식에 참석함으로써 중국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했는지는 모르지만, 평창 올림픽에 참석한 중국 대표의 서열과 비교하면 균형을 잃은 것이고 결과적으로 중국의 정치적 목적에 장단을 맞춘 셈이 됐다.
 
초반부터 여러 논란과 불상사가 겹치면서 베이징 올림픽은 사상 최악의 올림픽으로 기록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남은 기간에는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고 올림픽 정신과 감동을 되찾길 바란다. 더불어 한국 선수단의 선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