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중 민간으로 흘러나온 군복과 구호품을 입어도, 서울 사람의 패션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종전 후 명동 양장점을 중심으로 ‘서울 패션’이 시작됐다. 서양에서 들어온 패션인 양장의 바람은 서울의 거리 풍경을 크게 바꿨다. ‘마카오 신사’와 ‘자유 부인’으로 상징되는 서울 멋쟁이가 나타났다.
1960년대 경제 개발이 대대적으로 추진되면서 간편한 양장이 강조됐다. 개량 한복과 재건복을 입는 신생활 재건 운동이 펼쳐져 의복은 간소해지고 양장이 일상화됐다. 패션의 혁신이 재개된 건 70년대다. 경제 성장 속에 자란 대학생 등이 대중매체를 통해 해외 패션 정보를 파악하고 장발 머리에 청바지, 미니스커트를 소화했다. 72년 10월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건전한 사회 분위기를 명목으로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하고 고고클럽 영업을 정지하면서 청년 문화는 쇠퇴했다.
K-패션의 틀이 완성된 건 ‘X세대’가 등장한 1990년대다. 개성을 중시하는 신세대는 힙합 패션으로 거리를 휩쓸었다. 해외 고급브랜드 소비를 주도한 ‘오렌지족’도 나타났다. 서울 여러 곳이 다양한 패션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10~20대 중저가 패션은 명동, 고급패션은 압구정동과 청담동, 의류 도매시장은 동대문, 대학가 패션은 이대와 홍대 등이다.
“카페거리, 오렌지거리로 불리는 홍익대 앞 상권이 신세대 패션광장으로 변하고 있다 (…) 이들 매장에서 판매하는 의류 등은 ‘남과 같은 모습은 싫다’는 요즘 젊은 층들의 기호에 맞게 다양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 치장할 수 있는 토털제품들이 주류인데 (…) 대중적인 소품은 공유하면서 독특한 디자인을 겨루는 경연장(?)이 이곳 패션거리다.”(1995년 4월 21일자 중앙일보)
서울역사박물관은 3월 27일까지 ‘서울 멋쟁이’ 기획전시전을 연다.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은 “패션은 개인적 취향과 시대의 유행, 즉 사회적 시선도 담고 있다”며 “이번 전시가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