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노조 "민주당 항의 한마디에 이재익PD 하차...참담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2.02.07 16:09

수정 2022.02.07 19:51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이재익의 시사특공대' [사진 SBS 홈페이지 캡처]

S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이재익의 시사특공대’를 진행한 이재익 SBS PD가 더불어민주당 항의로 방송에서 하차하며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SBS 노동조합도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는 7일 성명을 내고 "매일 정오에 청취자를 찾아가던 진행자가 민주당의 항의 한마디에 교체됐다"며 "항의와 교체 사유는 황당함을 넘어 낯부끄러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해당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비판을 해왔다"며 "다의적 표현이 날카롭고 따끔하게 느껴졌으면 부끄러워하고 반성부터 하는 게 정상"이라며 "언론사에 항의부터 하는 후진적 모습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항의를 받을 때마다 진행자를 교체해야 한다면 누가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고, 어떤 프로그램이 존속될 수 있겠는가"라며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을 금지하던 그 시절로 퇴행하길 원하는 게 아니라면, 집권 여당의 방송 자유 침해는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SBS 노조 측은 이번 사태에 대해 "묵과할 수 없다"며 노사 대표가 참여하는 공정방송협의회를 신속히 개최해 진상규명에 나서기로 했다. 한편 '시사특공대'의 청취자 게시판에는 7일 오후 현재 '이재익 피디를 돌려주세요' '내로남불당. 언론탄압당' '이재익 하차 반대' 등 이 PD의 하차에 항의하는 150여건의 글이 올라왔다.
 

SBS 라디오 '시사특공대' 게시판 [사진 SBS 라디오 캡쳐]

 
앞서 이 PD는 6일 자신의 블로그에 ‘작별인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지난 토요일 저녁에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며 “정치권에서 항의가 들어왔다고 하길래, 아차 싶었다”고 하차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며칠 동안 ‘국민의힘’ 관련해서 강경한 표현으로 비판했던 일들이 떠올랐다”며 “그런데 의외로 항의가 들어온 쪽은 더불어민주당이었다”고 했다. 
이 PD에 따르면 지난 4일 방송 첫 곡으로 DJ DOC의 ‘나 이런 사람이야’를 선곡했고 노래 가사 중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 대하고 이 카드로 저 카드 막고’ 부분을 소개했는데, 이 부분을 민주당에서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이 PD는 “제가 의도했던 방향은 ‘내로남불’ 비판이었다”며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 대하는’ 그런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안 되겠다, 누구라고 이름을 말하면 안 되지만 청취자 여러분 각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날 이 PD의 하차를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윤재옥 선대본부 상황실장은 “민주당의 언론과 방송 재갈 물리기 시도가 도를 넘고 있다”며 “이 PD가 불과 며칠 전 국민의힘을 향해 잘못을 비난할 때는 무사했다. 야당은 비난해도 되지만 여당을 비난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했다.  
정의당은 "유신 정권의 금지곡 사태가 떠오를 만큼 어처구니없는 진풍경"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김창인 정의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고작 1건의 민주당 항의로 단 하루 만에 담당 PD가 하차했다"며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김혜경 씨와 관련된 공무원 갑질·법인카드 유용 논란에 뜨끔했나보다. 그야말로 '민주' 없는 민주당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적이 있는지 정확히 해명하라"고 촉구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민주당 권혁기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부단장은 “선대위가 방송국에 문의와 항의를 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라며 “DJ(이 PD)가 방송 중 이재명 후보 실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이 후보라고 인식할 수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으로 뽑으면 안 된다’ 이런 표현을 썼다”고 했다. 그는 “방송은 공인이 하는 것인 만큼 특정 후보를 찍어라, 찍지 말라는 것은 선거법에 저촉되는 발언”이라며 “(이 PD 하차) 조치는 SBS가 한 것이며 저희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시?도당 위원장단 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방송가에서는 음주운전 등 현행법 위반이나 품위유지를 지키지 못한 것도 아닌데, 경고 등의 조치 없이 곧바로 하차시킨 것은 과도한 처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클래지콰이 출신 가수 호란과 개그맨 조원석 등이 음주운전으로, 김성준 전 앵커가 '몰카' 혐의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정치권 비판으로 물러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한 라디오 방송 관계자는 "특정인 이름을 거명한 것도 아니고, 에둘러 비판한 것을 두고 바로 하차까지 시켜서 굉장히 놀랐다"며 "특정 정치인 지지를 노골적으로 호소하는 진행자도 멀쩡히 자리를 지키는데 참 씁쓸한 풍경"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 공식입장을 내기로 했던 SBS는 입장 발표를 미루다가 오후 4시쯤 입장문을 냈다. SBS 라디오센터는 "SBS는 시사프로그램에서 모든 이슈를 다룸에 있어 최우선적으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정해두고 있다"며 "이채익 PD의 하차는 이 원칙이 훼손되었다고 판단해 결정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송 내용에 대해 이재명 후보 캠프 측의 항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항의는 종종 있는 일이고 이 때문에 이재익 PD가 하차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