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권혁재의 사람사진] 나의 십자가는 쌀포대/ 앞치마 매는 김하종 신부

중앙일보

입력 2022.01.2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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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의 사람사진 / 김하종 신부

 
“신부님, 앞치마 안에 로만 칼라를 하시면 안 될까요?“
 
성남 ‘안나의 집’에서 
김하종 신부에게 사진을 찍기 전 이리 요청했다.
그가 신부인 만큼 성직자임이 드러나게끔 
로만 칼라를 부탁한 게다.
 
“로만 칼라는 큰 의미 없습니다. 
지금은 앞치마가 더 중요합니다.“
 
얼굴엔 환한 웃음을 띠었지만, 
그의 대답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그는 노숙인 무료 급식소와 
청소년 쉼터인 ‘안나의 집’을 이끈다.
그가 노숙인과 밥 한 끼 나누겠다며 
이렇듯 앞치마를 맨 게 30년째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끼니, 
그 끼니조차 당연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추위와 배고픔에 주린 사람들을 위한 
한 끼 식사가 중요해요.
제게 밥과 사랑은 하나입니다. 
저에게 십자가는 쌀포대입니다.“
 

안나의 집에서는 한 끼에 800인분의 밥을 한다. 김 신부에게 밥은 곧 사랑이다.

 
그는 서른셋이던 1990년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왔다.
김대건의 김, 하느님의 종이라는 의미로 
‘김하종’이라 이름 지었다.
 
“한국에 왔을 때 
제 마음에 두 가지 사랑이 있었어요.
예수님과 어려운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죠.
사실 저도 어렸을 때 
난독증이라는 고통을 겪었어요.
제가 큰 고통을 겪었기에 
어려운 이를 돕고 살아야겠다는 맘을 먹은 겁니다.
버림받은 이들, 노숙인들, 가난한 이들, 
고독한 노인들, 길거리 청소년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에게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서른다섯에 시작한 그의 밥 나눔은 
어느덧 예순다섯이 되도록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공으로 그는 2015년 특별 공로자 자격으로 
한국 국적을 받았다.
 
“저는 주민등록증을 가진 한국 사람입니다. 
장기기증, 시신기증서약도 했고 
한국에서 뼈를 묻을 겁니다.“
 

김하종 신부는 설거지에 능수능란하다. 오래 숙련 솜씨다. 그에게 설거지와 청소는 수양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한국 사람에게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게다.
지난해 그가 낸 책 제목 또한  『사랑이 밥 먹여준다』인 이유다.
밥과 사랑은 하나며, 
그에게 십자가는 쌀포대라는 하느님의 종 김하종, 
그는 오늘도 로만 칼라가 아닌 
앞치마를 매고 안나의 집으로 나선다.
800인분의 밥을 지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