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차 재즈가수 나윤선(53)은 아직도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고 했다. 지난 6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도 사진은 그의 친동생 나승렬(51) 포토그래퍼가 찍었다. 그런 그의 새 앨범 ‘웨이킹 월드(Waking World)’ 표지는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 흑백사진이다. 리모콘을 들고 그가 셀프 촬영했다. 나윤선은 “머리, 화장도 안하고, 집에 있는 옷을 입고 편하게 찍었다”며 “카메라를 이렇게 뚫어지게 쳐다본 앨범 사진은 처음”이라고 했다.
“두 달일 줄 알았는데 2년” 코로나19 고립이 만든 11곡
나윤선이 11번째 앨범을 냈다. 가사부터 음 하나하나 직접 쓴 11곡을 모았다. 자작곡만으로 앨범을 꽉 채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윤선은 “첫 앨범 같은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인터뷰
“다른 일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슬픈 음악 좋아한다, 비틀즈 같은 곡 쓰고 싶었다”
전에 써둔 곡도 있지만 대부분 끝내지 못했던 미완성 곡들도 이번에 완성했다. 타이틀곡 ‘웨이킹 월드’는 첫 4마디 정도 써뒀던 곡이다. 나윤선은 “현실이 너무 암담하면 꿈에서 깨고 싶지 않고, 눈을 뜨면 다시 꿈을 꾸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나”며 “지금 현실이 꿈, 악몽 같아서 쓰게 된 곡”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덕? 탓? 귀한 녹음실‧연주자 모두 "OK"
이번 앨범 녹음은 프랑스 파리에서 했다. 곡을 다 만들었을 무렵인 지난해 7월, “‘비행기가 뜬다’고 기적적으로 연락이 와서” 공연을 위해 유럽으로 넘어간 김에 녹음도 했다. 나윤선은 “팬데믹 때문에 원래는 예약이 어려운 녹음실도 다 되고, 섭외가 거의 안되는 바쁜 뮤지션들도 일정이 비어서 완벽한 멤버를 구성했다”며 “행운이라고 해야 되는지 정말…”이라고 말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타이틀곡 ‘웨이킹 월드’의 도입부를 여는 하프 같기도, 거문고 같기도 한 묘한 소리는 오래된 업라이트 피아노 뚜껑을 열고 압정을 대서 금속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를 만든 것이다. 드럼 위에 쌀을 뿌려 직접 휘저으며 파도 소리, 빗소리와 비슷한 소리도 만들었다. 나윤선은 “‘이런 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상상만 하고 설명은 못 했던 소리를, 현장에서 엔지니어와 피아니스트가 모여서 뚝딱뚝딱하더니 만들어냈다”고 극찬했다.
"꿈이 생겼다"는 29년차 톱 재즈가수
"지금 하고 있는 게 꿈을 이룬 거여서, 더 바라면 나쁜 사람인 것 같아서 늘 '꿈이 없다'고 얘기해왔다"는 나윤선은 이번 앨범을 만든 뒤 "코로나19 같은 게 또 올 수도 있으니, 지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꿈이 생겼다고 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대도 노래를 할 것이라는 그는 지금까지도 아침이면 "소리가 잘 나나? 항상 궁금하다"며 소리를 내보고, 물을 2리터씩 마시고, 일 외에는 별다른 취미 없이 오롯이 쉬는, 노래로 꽉 찬 삶을 산다.
지난해 여름 유럽 투어 공연을 다닌 나윤선은 “벨기에는 야외 공연에서 관객들이 마스크를 벗을 수 있어서 얼굴을 보고 공연했다”며 “너무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라 이상하고 당황스러우면서도, 이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달았다. 계속 눈물이 나더라”라고 관객에 대한 갈증을 전했다.
나윤선은 새 앨범의 곡을 들고 글로벌 투어를 위해 지난 10일 다시 유럽으로 향했다. 그는 "관객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하는데, 이번 유럽 투어에서도 공연 뒤 관객을 만나진 못한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취소만 안됐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