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최상위 우수고객(VIP) 회원은 이맘때면 초조해진다. 지난해 백화점에서 얼마를 썼는지에 따라 VIP 등급이 다시 정해지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약 4000만~5000만원을 더 소비해야 안정적으로 최상위 등급에 속할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보복 소비’로 명품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백화점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냈기 때문이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의 VIP 등급 중에서 가장 높은 ‘트리니티’의 구매 실적은 1억원 후반대에서 2억3000만~2억4000만원으로 약 20%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리니티는 상대 평가제다. 백화점에서 소비를 많이 한 회원의 내림차순에서 상위 999명에게만 부여하기 때문에 매년 금액 하한선이 다르다. 이 때문에 연초마다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실적 합산의 마지막 월인 1월 담당 직원에게 등급 컷을 문의하고, 막판 스퍼트를 내는 경우도 있다.
현대백화점은 최우수 등급에 해당하는 ‘쟈스민블랙’을 연간 1억2000만원 이상 구매 고객으로 한정해 내년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올해까지는 구매 이력이 연간 8000만~9000만원 이상인 고객이 쟈스민블랙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기준 금액이 30%가량 오르지만 실질적으로 부담이 커지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자사 카드가 아니면 실적의 5분의 1만 인정되는 등 제약이 많았지만 올해부터 결제수단에 상관없이 VIP 실적에 반영된다.
특히 백화점 최상위 소비자의 특징이 변하면서 VIP 운영 방침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연예인이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에 40대 이상이 많았다면 최근엔 유튜버나 일타 강사,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젊은 층의 비중도 급증했다. 백화점 명품 매출에서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신세계가 48.2%로 가장 높고, 롯데 45%, 현대 44.7%의 순서로 나타났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나를 위한 명품 소비를 늘리다 보니 VIP 조건에 근접해진 소비자가 많아졌고, 이들도 한 번쯤은 최상위 등급에 속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기존 VIP 회원들 역시 그동안 누리던 혜택을 놓치고 싶을리가 없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구매 실적을 채우려 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