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김부선 벽화 사고친 그들…"쥴리와 우린 결 다르다" [보이스]

중앙일보

입력 2022.01.11 18:00

수정 2022.01.1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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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말, 영상에선 다 정치 얘기하면서, 그림은 왜 안 돼요?”
 
대선 후보 풍자 벽화로 논란을 낳았던 벽화가 닌볼트(43)와 탱크시(39)는 “그림이 다룰 수 있는 주제가 더 넓어졌으면 한다”며 이렇게 입을 모았다. 두 작가는 지난해 ‘쥴리’ 벽화 논란이 벌어졌던 서울 종로의 한 중고서점 벽면에 나란히 정치적 색채가 강한 벽화를 그려 논쟁에 뜨거운 기름을 부었다. 진보 성향의 닌볼트는 ‘전두환·개·사과’ 벽화를, 보수 성향의 탱크시는 ‘김부선’ 벽화(원제목 ‘찢’)를 각각 그렸다. 

[보이스] 닌볼트·탱크시 작가 인터뷰

진보 성향의 닌볼트(43·왼쪽) 작가와 보수 성향의 탱크시(38) 작가가 지난 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닌볼트 작가는 과거 한 언론사에서 그래피티 만평을 그렸다고 한다. 탱크시 작가는 “세상의 부조리를 탱크처럼 부숴버리겠다”며 영국의 가명 작가 ‘뱅크시’과 ‘탱크’를 합성해 작가명을 지었다고 한다. 둘은 왜 대선 후보들의 예민한 논란과 의혹을 벽화로 그렸을까. 지난 6일 닌볼트와 뱅크시를 만났다.
 

‘쥴리’벽화와 ‘전두환+김부선’ 벽화는 다르다

 
Q. 벽화 논란의 시작은 ‘쥴리’ 벽화였는데, 어떻게 봤나
닌볼트: 의혹만 갖고 과하게 그렸다. ‘쥴리’ 벽화는 전문 작가 그림이 아니다. 건물주가 의뢰해서 돈 받고 그린 그림이다. 작가의 철학이 아닌 건물주 의도만 담긴 그림이라 회의적으로 봤다. 흑색선전, 진상 같았다.   
 
탱크시: 비방 목적의 선동 벽화라고 봤다. 우리 벽화와 결이 다르다.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관철동 종로 12길 한 건물 벽면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 씨 비방 벽화가 걸려 논란이 일었다.

 
Q. 두 사람 벽화와 ‘쥴리’ 벽화는 뭐가 다른가.
닌볼트: ‘전두환·개·사과’ 벽화는 상상력을 가미하지 않았다. 의혹만을 담기엔 진실성이 퇴색될 거라고 봤다. 윤석열 후보 장모 징역형, 손바닥 왕(王)자, 개·사과, 전두환 옹호 발언 등을 ‘더하기(+)’와 ‘등호(=)’만 써서 나열했을 뿐이다.  
 
Q. ‘쥴리 벽화’ 빈자리 채운 건, 논란에 편승하려는 시도였나.
닌볼트: 전혀 아니다. 원래 ‘위드코로나’를 주제로 한 밝은 느낌의 시안이 이미 나와 있었을 때, 윤석열 후보가 전두환 옹호 발언을 하고 광주에 갔다. 광주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이 벽화를 그렸다. 어떻게 보면 사고를 친 거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닌볼트 작가는 '쥴리' 벽화가 걸렸던 자리에 윤석열 후보 논란을 네 컷으로 나눈 벽화를 걸었다. 왼쪽부터 장모 논란, 왕(王)자 논란, 사과 논란, 전두환 논란이다.

 
탱크시: 네 컷으로 나눠 등호 붙여 그림을 풀어낸 건 신선하고 재밌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우파 진영을 깎아내리는 그림이라 마음에 썩 들진 않았다.  
 
닌볼트: 나도 (탱크시가 그린) ‘김부선’ 벽화가 아름답진 않았다.
 

‘김부선’ 벽화 속 두 남녀…“보는 사람 판단에 맡겨” 

 
Q. 닌볼트의 ‘전두환’ 벽화에 맞불로 ‘김부선’ 벽화를 그렸는데, 어떤 의미였나
탱크시: 닌볼트 작가는 윤석열 후보 이슈를 여러 컷에 나눠 그렸다. ‘김부선’ 벽화는 캔버스 한 폭에 이재명 후보의 모든 이슈를 담았다. ‘아수라’ 백작이 여러 이슈가 상징적으로 담긴 작품을 찢는 컨셉이다. 
  

탱크시 작가는 이재명 후보의 각종 논란을 한 폭의 벽화에 담았다. 상징과 은유를 통해 이 후보의 여러 이슈를 담아냈다. 탱크시 작가.

 
Q. ‘김부선’ 벽화에 등장하는 철창 속 남녀는 누군가.
탱크시: 그건 따로 말하고 싶지 않다. 보는 사람들이 판단하면 된다.  
 
닌볼트: 자기가 그렸는데 왜 말을 못하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는 그런 마음인가….
 
탱크시: 개인을 특정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철창 안에 갇힌 사람들 정체는 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용대로 판단하라는 의도로 그렸다.
 
Q. 김부선 배우는 정치인 아니지 않나, 명예훼손 아닌가.
탱크시: 그분(김부선 배우) 의견에 힘을 싣기 위해 그렸다. 결코 폄훼·비방 목적의 벽화가 아니었다. 외설적이라든지, 인물 자체를 흉하게 그리지 않았다. 김 배우가 출연한 영화의 한 컷을 보고 그렸다. 또 오해가 있는 게 ‘김부선 배우를 특정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김부선 배우 그린 게 맞다.  
 

배우 김부선 씨는 탱크시 작가의 벽화를 수차례 훼손했다. 탱크시 작가는 훼손이 심하게 돼 섭섭했지만 참여 미술의 한 형태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Q. 김부선 배우가 해당 벽화를 훼손하고 인증샷까지 올렸다. 탱크시 작가는 이를 “비상식적”이라고 비판했다.
탱크시: 내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 기획사 대표가 나를 대변한다며 이야기한 부분이 기사로 나갔다. 나는 오히려 (김 배우의) 작품 훼손도 참여 미술의 한 형태라고 생각했다. (훼손 과정이) 재밌었고 존중했다. 물론 너무 여러 번 심하게 훼손해서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어쨌든 김 배우와 오해한 부분에 대해선 서로 사과했다.
 
두 작가는 대선 후보들의 논란들을 도심 한복판 약 13㎡ 크기 벽화에 가득 채웠다. 당연히 거센 비판과 공격이 뒤따랐다. 그간 하던 일도 더러 끊겼다고 했다. 새벽 3~5시까지 이어진 협박 전화는 물론, 물리적 위협에도 시달렸다고 했다. 두 작가 모두 “과격한 공격은 문제지만, (그림을 그렸으니) 욕이나 비판은 충분히 이해하고 감내한다”면서도 “정치 벽화 논란의 본질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정치 벽화는 왜 안 돼나. 여기가 북한인가”

 
Q. 생업 지장 받는데 그림 그린 목적은. 이슈화를 원했나.
닌볼트: 전혀. 여태껏 당연히 있어야 할 게 없던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말로, 글로, 영상으로 정치 얘기하고 정치에 이용하는데, 그림은 왜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으면 안 되나. 해외에선 흔한 일인데, 우리나라만 이상한 일이다. 드러난 의혹을 그림으로 표현만 했을 뿐 아닌가. 여기가 북한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지 않나. (우리나라) 벽화 보면 99%가 꽃·나무·구름·무지개 같은 밝은 그림이다. 괴기스럽거나 다양한 이야기를 시도해도 되지 않을까. 다른 문화·예술 영역보다 그림·벽화 분야는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영역이 확장됐으면 한다.  
 
탱크시: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다. 그게 왜 제약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Q. 왜 사람들이 유독 ‘정치 벽화’에 더 예민했을까.
닌볼트: 무의식적인 검열이 있다고 본다. ‘재밌다’, ‘반대한다’ 가볍게 의견을 냈으면 하고, 관대하게 다른 의견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탱크시: 글이나 말, 영상과 달리 그림은 시각적으로 한 번에 각인된다. 설명이 흘러가지 않고 한방에 박혀 메시지가 세다. 그래서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이재명·윤석열 그린 벽화 속 숨겨진 이야기

 
Q. 이후 아예 ‘벽화 배틀’을 진행했다. 그림들이 다소 얌전해졌던데.
닌볼트: ‘전두환·개·사과’ 벽화 2탄을 그리고 싶었는데, 안 좋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부담을 느꼈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지난해 12월 탱크시 작가와 닌볼트 작가는 '히어로'라는 주제로, 각자가 지지하는 대선후보를 응원하는 '벽화 배틀'을 진행했다.

 
탱크시: ‘히어로’라는 주제로 지지 후보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근데 단순히 찬양하거나 열광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난 윤석열 후보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작가 뱅크시의 ‘Snow’ 작품을 차용했다. 작품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강렬하게 타오르던 촛불이 꺼져가며 재와 그을음이 날린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는 그게 눈인 줄 알고 두 팔 벌려 혀를 내민다. 이런 잘못된 상황을 막아줄 건 망가진 ‘파란’ 우산이 아닌, 윤석열이 든 ‘빨간’ 우산이란 걸 표현했다.
 
닌볼트: 꺼져가는 촛불이 국민의힘인 줄 알았다. (웃음) 파란 우산은 또 찌그러트려 놓고…굳이 그렇게 해야 했나
 
탱크시: (파란 우산은) 망가졌다.
 

닌볼트 작가는 탱크시 작가와의 '벽화 배틀'에서 이재명 후보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아이언 명(明)' 벽화를 작업했다.

 
닌볼트: 내가 그린 건 ‘아이언 명(明)’이다. 영화 ‘어벤저스-엔드 게임’에서 아이언맨이 자신을 희생해 세상을 구하는 그 장면을 오마주했다. 근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아이언 명’이 피를 흘리고, 엄지손가락엔 인피티니 스톤(극 중 절대 능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6개 보석)이 빠져 있다. 아직 대통령이 아니라서 겸손했으면 좋겠다는 의미 담았다. 또 ‘파란’ 태양이 지구에서 떠오르며 붉은빛을 걷어낸다는 걸 표현했다.  
 
탱크시: (아이언 명이) 지구 부수러 오는 그림인 줄 알았다.
 
두 작가에게 ‘정치’만큼 무서운 건 코로나 19 사태였다. 두 작가 모두 “평소보다 일감이 8~90% 줄었다”고 했다. 예술인 코로나 지원금 등을 신청했느냐고 묻자 “신청 방법이 어렵고, 주변에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Q. 코로나 등 개인적 상황 힘든데, ‘정치 벽화’ 계속 그릴 건가.
탱크시: 사실 나서기 쉽지 않지만은 않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앞으로도) 사회적 이슈를 말할 창구로 그림을 활용할 생각이다.
 
닌볼트: 계속할 생각이다. 정치·사회적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그려 이 영역을 더 확장하고 싶다. 곧 벽화를 걸 예정이다.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