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희한한 건 지금 한국 대선의 광경을 ‘관객모독’으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배우 면면이 그럴듯하다. 한 명은 대사를 칠 때마다 말이 바뀐다. “존경하는 관객 여러분”이라고 말하곤 곧바로 “내가 진짜로 느그들 존경하는 줄 알았냐”고 씩 웃는다. 욕을 하는데 연기 같지 않아서 놀랍다. 또 한 명은 “관객 여러분이 불러서 부득이하게 나왔다”며 화를 낸다. 분명 초보 배우인데 다른 배우들에게 “연기가 같잖다”고 호통친다. 다른 한 명은 틈날 때마다 “무대에서 그만 내려가라”며 동료를 공격한다. 그런데 이 배우 최다 출연자다. 극단 후배들이 자리 좀 비켜달라고 해도 꿋꿋이 무대에 오른다. 마지막 배우는 무슨 공연이든 열린다고만 하면 달려온다. 그런데 연기력이 좀체 늘지 않는다. 카리스마 있는 배역에 욕심을 내지만 동료들은 “연기 초딩”이라고 놀린다.
아, 그런데 이 연극은 도무지 무대에 올릴 수 없을 것 같다. 부조리극의 극단을 보는 것 같다. 아무리 ‘관객모독’이라지만 부끄러움은 누구 몫이란 말인가. 참고로 페터 한트케는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무대 위의 배우를 구경하러 온 관객을 비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관객모독’의 핵심 메시지는 ‘관객이여, 주체가 돼라’다. 이 글을 쓴 목적도 같다. ‘유권자여, 주체가 돼라. 안 그러면 물벼락 맞는 건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