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 가는 시진핑… 일당통치서 마오식 일인지배 시대로

중앙일보

입력 2022.01.04 16:09

수정 2022.11.3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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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1일 베이징 정협강당에서 열린 신년 다과회에서 중국 수뇌부가 문예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테이블 왼쪽부터 왕치산 국가부주석, 자오러지 중앙기율위 서기, 왕양 정협 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리커창 국무원 총리, 왕후닝 상무위원, 한정 부총리. 서열 3위의 리잔수 전인대 위원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홍콩 언론은 그의 삼촌 리장장(栗江江)이 최근 조사를 받고 있다며 연루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했다. [신화=연합뉴스]

올 하반기 중국공산당(중공)은 제20차 전국 대표대회(약칭 ‘20대’)를 개최한다. 일당 통치를 채택한 중국에서 당 대회는 5년마다 차기 지도부를 뽑는 최대의 정치 이벤트다. 특히 20대는 중국이 미국과 치열한 패권 경쟁을 펼치는 도중에 열린다. 시진핑(習近平·69)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공약인 미국을 제치고 세계 패권국이 되겠다는 ‘중국몽’ 달성의 중요한 시점이다.
 
시 주석은 20대에서 3연임을 노린다. 시 주석은 새해를 맞으며 69세가 됐다. 그동안 67세까지는 직을 유지하고 68세 이상의 지도자는 물러나던 ‘칠상팔하’ 규범을 깨야 한다. 이를 위해 4년 전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애는 개헌을 완료했다. 이를 통해 이번 20대에선 시 주석이 누군가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공산당 20대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인사 전망.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 2002년에는 장쩌민(江澤民·95) 주석이 후진타오(胡錦濤·80)에게 당권과 국가주석직을 넘겼고, 2012년 후진타오 주석은 시진핑에게 당과 국가는 물론 군 통수권까지 넘겼다. 그런데 이번엔 시진핑 3연임으로 중국 정치는 종신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사후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선다.

미리 본 2022 ②시진핑 주석 3연임
가을 20차 당대회 3기 지도부 선출
4년전 개헌, 지난해 역사결의로 준비
차기 총리 리창·리시·왕양 등 경합
일인 독주가 권력투쟁 촉발 우려

지난해 6월 28일 중국 베이징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 축하공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이 대형 화면에서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총서기를 ‘동급자 중의 일인자’로 규정했던 집단지도제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시 주석은 이미 2020년 19기 5중전회(5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중앙위원회 공작조례’를 바꿨다. 총서기 1명을 정치국 전체와 맞먹는 동급으로 격상시켰다. 임기제 적용을 받지 않는 당 주석제나 다름없다. 지난해 6중전회에서는 1945년 마오쩌둥과 1981년 덩샤오핑에 이어 세 번째 ‘역사결의’를 통과시켰다. 이른바 ‘시진핑 사상’을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반열에 올렸다. 요즘 언급이 잦아진 ‘자아혁명’처럼 스스로 권력을 주고받을 ‘자아(셀프) 승계’ 절차만 남겨놨다. 
 
시 주석에게선 마오의 그림자가 보인다. 일당 통치가 일인 통치로 바뀌는 양상이다. 지난달 20일 반(反)부패를 지휘하는 당 중앙기율검사위 홈페이지에 세 번째 ‘역사결의’ 해설문이 실렸다. ‘역사결의’에 ‘투쟁’이 50회나 언급됐다면서 “새로운 투쟁이 막 시작됐다”고 했다. “하늘과 땅과 사람과 더불어 싸우니 그 즐거움이 무궁하다(『윤리학 원리 비판』, 1917)”는 마오의 청년기 투쟁 철학을 시 주석이 따라가는 모양새다. 그래서 20대가 ‘새로운 마오쩌둥’의 등장이라는 비유도 나온다.
 
  

지난해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 기념대회가 열린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걸린 마오쩌둥 총상화 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손을 흔들며 참가자 환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대 일정은 미정이다. 올여름 전·현직 지도부가 모이는 베이다이허(北戴河) 원로회의를 마치고 8월 말 정치국회의에서 확정한다. 권력 교체가 이뤄졌던 2002년과 2012년에는 11월 8일에 개막했다. 11월은 미국의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의 명운을 건 중간선거(11월 8일)가 열리는 시점이기도 하다. 즉 올해 11월 시 주석이 3연임에 성공해 ‘새로운 마오쩌둥’에 등극할 때 바이든 대통령은 중간선거 성적표를 받아본다. 세계가 20대를 주목하는 이유다. 


 
20대에선 차기 지도부 선출은 물론 미래 5년 당·정·군·사회·경제·외교 정책을 담은 정치보고를 청취 심사한다. 여기엔 동북아 안보의 최대 현안인 중국발 대만 통일 로드맵이나 시간표가 등장할 수도 있다.
 
시진핑 3기 총리 인선도 주목된다. 헌법이 연임까지만 허용한 리커창(李克强·67) 총리는 교체 대상이다. 차기 총리로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사단) 중에서 리창(李强·63) 상하이 서기, 리시(李希·66) 광둥성 서기가 경합 중이다. 경쟁자 진영에선 왕양(汪洋·67) 정협주석, 후춘화(胡春華·59) 부총리가 있다. 중간에 상하이방 배경의 한정(韓正·68) 부총리도 오르내린다. 은퇴 대상인 한정과 칠상팔하 폐지 혜택을 공유하는 타협 카드다.
 
5년 뒤 시 주석이 74세가 되는 2027년 4연임을 위한 포석도 필요하다. 5년 전에는 3연임의 걸림돌인 칠상팔하를 흔들기 위해 69세였던 왕치산(王岐山·74)에게 국가부주석을 약속했다. 은퇴 대상자를 명예직에 남기는 반퇴(半退)가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올해 6월 개관한 베이징 중국공산당 역사전람관 3층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전시실의 ‘시간과 공간의 터널’이다. 1921년, 1949년, 1978년, 2012년, 2020년 주요 사건과 당시 공산당원 숫자가 표기되어 있다. 정면에는 지난 2019년 국경절 천안문 열병식에서 손을 흔드는 시 주석이 보인다. 그 아래로 ‘나는 장차 내가 없다. 인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我將無我 不負人民)’는 여덟 글자가 선명하다. 신경진 기자

‘역사결의’가 말미에 언급한 ‘후계자(接班人)’도 20대 주요 의제다. 익명의 당내 인사는 “시 주석은 옛 승계 시스템을 깨뜨렸다”며 “그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승계 제도는 정치 개혁에서 시 주석의 가장 중요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스에 말했다. 마오와 덩 모두 제도화에 실패했던 후계 문제를 시 주석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은 후계에 대해 “마오쩌둥은 최종 결정권을 행사했고, 덩샤오핑은 원로 협의와 격대지정(隔代指定, 차기 아닌 차차기 후계 지정), 후진타오는 민주 추천제, 시진핑은 면담제도를 보탰다”며 “문제는 시 주석이 퇴임 규칙을 흔들면서 후계 선발 시스템이 작동하기 힘들게 됐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 집권이 후계 선정의 제도화를 방해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런 측면에선 시진핑 일인 체제가 외양과는 달리 정치적 불확실성을 높일 수도 있다. 밍쥐정(明居正) 대만대 명예교수는 “만일 차기 상무위원 숫자까지 줄인다면 파벌 간 자리 쟁탈전만 아니라 파벌 내 다툼도 가능하다”며 “눈에 보이는 창은 피하기 쉽지만 몰래 날아오는 화살은 피하기 어렵다”고 권력투쟁 격화를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신년다과회에 불참한 서열 3위 리잔수(栗戰書·72) 전인대 위원장을 둘러싼 사정설이 급부상했다. 2일 인민일보는 “사회주의 국가 정권을 흔들려는 자와 당내의 정치 무리·소그룹·이익집단을 꾸미려는 자는 가차 없이 결연히 조사·처리해야 한다”는 시 주석의 6중전회 발언을 소개했다. 중국 정치가 마오쩌둥 이후 가지 않았던 길로 다시 들어서고 있다.
 
☞칠상팔하=지도자 종신제를 철폐한 덩샤오핑 이후 2002년 16차 당 대회부터 적용된 은퇴 규정이다. 67세 이하는 중앙위원회에 남고 68세 이상은 은퇴하는 불문율이다. 2017년 19대에서도 지켜졌다. 단 당시 69세였던 왕치산이 당직에서 물러나고 의전 담당 국가부주석에 취임하며 변화를 예고했다.
 
☞중공 전국 대표대회(당 대회)=중공의 헌법인 당장(黨章)이 5년에 한 차례 개최를 명문화한 당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다. 개회 기간 당장을 수정하고, 폐회 기간 의사 결정 권한을 위임할 각 200여명의 중앙위원과 후보중앙위원을 선출한다. 31개 성시(省市)와 군·중앙기관 등 40개 선거단위와 393개 지급(地級), 2845개 현(縣)급, 4만1636개의 향진(鄕鎭)급 간부 3000여만명이 당 대회 전후 2년간 교체된다. 중공 당 대회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복잡한 지도부 교체의 하이라이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