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육십간지(六十干支) 중 39번째인 임인년(壬寅年)으로 천간(天干)의 임(壬)이 흑색, 지지(地支)의 인(寅)은 호랑이를 뜻해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도 불러요.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 고조선 건국에 얽힌 단군신화부터 각종 설화·전래동화뿐 아니라 『삼국사기』『조선왕조실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호랑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처럼 오랫동안 이 땅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한 호랑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주로 아시아 대륙에 살았던 호랑이는 20세기 9개 아종(종(種)의 바로 아래 단계로 종을 세분화한 생물 분류 단위) 중에서 4종(발리·자바·카스피·남중국)이 야생에서 멸종했습니다. 남중국호랑이의 경우 동물원 등에 아주 소수만 살고 있죠. 남은 5종(벵골·인도차이나·말레이·시베리아·수마트라)의 야생 호랑이를 전부 합쳐도 세계적으로 수천 마리밖에 남아있지 않아 IUCN 적색목록에 위기(EN·Endangered)종으로 올랐어요.
10만 년 이상 한반도에 서식하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경복궁에 나타나는 등 우리 주변에 살던 호랑이는 일제강점기 절멸에 가깝게 줄어듭니다. 조선총독부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짐승을 잡아 없앤다는 ‘해수구제(害獸驅除)’ 사업을 벌여 1915년부터 대대적인 사냥에 나섰죠. 호랑이를 비롯해 표범·곰·늑대 등도 떼죽음을 당했어요. 사진 등 자세한 포획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는 1921년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한 마리가 마지막으로 호랑이는 남한 지역에선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호랑이가 이 땅에 살았던 흔적은 구석기시대 충북 청주시 두루봉 동굴유적에서 발견된 뼈부터 청동기 반구대 암각화, 고구려 고분벽화, 민화와 각종 장식품, 설화·지명·속담 등 다양하게 남아있는데요.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하며 나라를 상징하는 동물이 된 호랑이를 만나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호랑이 나라’로 떠났습니다. 호랑이에 관한 상징과 문화상을 조명하기 위해 국립민속박물관이 마련한 특별전시죠.
‘호랑이 나라’에서 만나는 문화적 호랑이
“1950년대 한글학회에서 편찬한 우리말 사전이에요. 여러분은 호랑이라고 하는 게 더 익숙할 텐데요. 사전을 보면 호랑이보다 범에 실린 내용이 더 많죠. 뜻풀이와 설명을 보면 당시 호랑이보다 범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어의 쓰임도 변했음을 알 수 있어요.” 두 사람은 범 설명에는 호랑이 그림도 그려져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죠.
호랑이를 비롯한 열두 띠동물을 나타내는 십이지는 말 그대로 12년에 한 번씩 돌아옵니다. 김 학예연구사는 “같은 주제지만 다른 전시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한다”며 다양한 십이지 유물을 선보였죠. 찻잔·재떨이 같은 생활 소품부터 휴대용 해시계·나침반에도 십이지가 활용되고 있었어요. 십이지는 시공간을 나타내는 데도 쓰였거든요. 호랑이는 공간적으로 동북동, 시간적으로는 인월(寅月·음력 정월)과 인시(寅時·오전 3~5시)를 나타냅니다. 사찰에서 큰 행사를 할 때면 각 방위에 해당하는 십이지를 신의 모습으로 그려 걸고 잡귀를 막는 역할을 맡겼죠. 전시된 십이지신도의 호랑이는 긴 칼을 들고 잡귀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흥미로운 건 태어난 해의 띠동물로 성향을 따지거나 궁합을 보고 신년 운세를 점치는 당사주 관련 유물이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1880년대 당사주 보는 그림과 호랑이띠에 관한 설명이 나온 당사주책을 한참 들여다봤어요. 호랑이띠는 용감하고 진취적이며 솔직한 성향이라고 하네요.
김 학예연구사는 호랑이 상징과 문화상을 다룬 2부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를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제목 그대로 호랑이가 우리 문화에서 어떤 상징으로 쓰이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는 유물을 모았어요. 용맹한 호랑이를 액을 막는 방패로 썼다고 했는데, 이는 무덤을 지키는 역할로도 활용되고, 마을을 지켜주는 산신의 모습으로도 나타납니다. 조선 이전에는 호랑이 자체가 산신으로 여겨졌는데, 점차 산신의 조력자 모습으로 변하게 되죠. 산신당 등에 걸린 그림을 보면 호랑이는 산신을 태우거나, 옆에 앉아 있곤 해요.”
벽사적 의미로 호랑이 그림을 그린 것을 넘어 호랑이 부적까지 만들었음에도 전래동화나 설화 속 호랑이가 때론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게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호랑이는 벽사와 더불어 은혜를 갚는 보은의 상징으로도 쓰입니다. 작호도를 살펴보는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김 학예연구사는 “장수를 의미하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기쁨을 뜻하는 까치와 함께 호랑이를 그린 것”이라며 “그림 소재 하나하나에도 다 뜻이 담겼다”고 설명했죠.
우리 문화에 다양하게 나타난 호랑이의 위상은 현대에 와서도 건재합니다. 각종 호랑이 이야기가 담긴 책을 비롯해 우표·연하장·달력이 계속 나오는 건 물론이고요. 우리나라 지도를 호랑이 모양으로 그리기도 하죠. 군부대와 대학교, 스포츠팀 등에서도 호랑이를 상징으로 쓰곤 해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하계·동계올림픽 두 번 모두 호랑이를 마스코트로 삼았습니다. 서울올림픽의 호돌이와 평창올림픽의 수호랑이죠. 김 학예연구사는 “넥슨코리아와 협업해 도트게임으로 표현된 호랑이 영상도 전시하고, 게임에서 쓸 수 있는 호건 아이템 이벤트도 마련했는데 인기가 많아 현재 잠시 중단한 상황”이라고 귀띔했어요.
‘호랑이 나라’
장소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2
기간 3월 1일(화)까지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5시(4시까지 입장)
장소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2
기간 3월 1일(화)까지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5시(4시까지 입장)
‘호랑이숲’에서 만나는 살아있는 호랑이
멸종위기인 백두산호랑이 종을 보전하고 야생성을 지키기 위해 경북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는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가 세워졌어요. 문수산 자락에 자리 잡은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 ‘호랑이숲’은 2010년 1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2015년 12월 준공, 2018년 5월 일반 대중에 개방했죠. 축구장 약 4개를 더한 넓이와 비슷한 3.8ha(3만8000㎡) 규모로 동물관리동(관리실·사육장)과 방사장 등을 갖춰 10마리의 호랑이를 동시 수용할 수 있습니다. 호랑이에 적합한 자연 서식지와 가까운 드넓은 초원 형태로 만들어져 동물 복지가 우수한 편이에요.
5마리 호랑이들의 맏형이자 국내 최고령 호랑이 두만이는 숲에서 4년을 보내고 노환으로 2020년 12월 20일 20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호랑이 수명은 야생에서 13~15년, 동물원 등 사육 환경에서 관리받는 경우 17~20년 정도로 알려져 있죠. 두만이가 떠난 슬픔도 잠시, 올해 10월 태범(수컷)·무궁(암컷) 남매가 호랑이숲에 들어왔습니다. 범궁남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에버랜드 스타 호랑이예요.
범궁남매는 에버랜드와의 동식물 교류 및 공동 연구를 위한 MOU를 통해 호랑이숲에 유학을 왔어요. 지난해 2월생으로, 생후 1년 6개월~2년 사이 어미로부터 독립을 시작하는 백두산호랑이의 습성을 감안한 프로젝트입니다. 앞으로 2년간 호랑이 생태를 공동 연구하게 되죠. 국내에는 현재 시베리아·벵골 등을 포함해 90여 마리의 호랑이가 동물원 등에서 사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중 백두산호랑이의 개체 수가 적어 한계가 있던 번식·질병 등 연구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방사장 곳곳에는 호랑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공이나 놀이시설도 마련돼 있죠. 이는 오락 요소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과 활동성, 야생성 증진에 도움을 주는 행동 풍부화 시설물 중 하나입니다. 공놀이도 하고 물놀이도 하고 여러 산책로를 돌아다니며 다른 호랑이들과 교류도 하며 시간을 보낸 호랑이들은 오후 4~5시 정도에 각자의 방으로 돌아와 먹이도 먹고 휴식하게 되죠. 사람은 하루에 세 끼를 먹지만, 이곳의 호랑이는 하루에 한 번 먹이를 먹는 시간이 돌아옵니다. 센터에선 닭고기 약 4~5마리, 소고기 1~1.5kg 등 약 3~5kg 정도를 제공하죠.
2005년생 한청이와 2011년생 우리는 나이가 꽤 차이 나는 데도 친하게 지냅니다. 베테랑 호랑이 사육사 민경록 주임은 “우리와 한청이는 호랑이숲에 와서 얼굴 익히기 활동과 약간의 힘겨루기 등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고 자신의 서열을 받아들이면서 친해졌다”고 했죠. 지난 10월 25일 유학 온 태범이와 무궁이의 경우 다른 호랑이들을 인식할 뿐, 아직 만나지는 않았는데요. 민 주임은 “호랑이들은 야생에서도 각각 개별 행동을 한다”며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서로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 (만남을) 진행해요. 태범·무궁이도 다른 호랑이와의 얼굴 익히기가 천천히 진행될 겁니다”라고 설명했죠. 범궁남매는 앞으로 5~6개월 정도는 계속 적응하는 데 시간을 보낼 예정이에요. 대방사장에 나와 일반 사람들을 만날 날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멸종위기 호랑이를 지키기 위해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는 야생과 유사한 자연환경에서 넓은 활동 공간을 제공해 호랑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호랑이숲의 호랑이들을 만나러 올 때 주의할 점이 있어요. “호랑이는 예민한 동물입니다. 큰소리를 내거나 방사장 안쪽으로 뭔가를 던지는 행동은 절대 하면 안 돼요. 호랑이가 스트레스를 받으니 조용히 눈으로만 봐주세요.”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
장소 경북 봉화군 춘양면 춘양로 1501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내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4시(동절기 11~2월, 하절기엔 오후 5시까지, 매주 화~일), 입구에서부터 이동시간(30분)을 고려해 호랑이숲 마감 1시간 전까지 수목원 입장
장소 경북 봉화군 춘양면 춘양로 1501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내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4시(동절기 11~2월, 하절기엔 오후 5시까지, 매주 화~일), 입구에서부터 이동시간(30분)을 고려해 호랑이숲 마감 1시간 전까지 수목원 입장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호랑이에 대해 깊이 알게 되어 저에게는 이번 취재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전시를 담당한 학예사님이 설명해주신 덕분에 평소 박물관에서 관람했을 때보다 훨씬 자세히 배울 수 있었어요. 전시한 유물들의 위치부터 조명과 배열까지 무엇 하나 신경 쓰지 않은 게 없었죠. 박물관이다 보니 알리고 싶고 전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도 해당 유물이 없으면 전시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듣고 안타까웠어요. 용맹함을 상징하는 호랑이해, 2022년에는 모두 용기를 내어 일을 잘 풀어나가길 응원합니다.
-장채원(경기도 이매초 6) 학생기자
저는 동물을 엄청 좋아했음에도 맹수인 호랑이·사자 등에는 깊은 애정을 갖지는 못했는데요. 이번 취재로 호랑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호랑이는 전래동화에서 보듯 무섭지만 어리석은 성격을 갖고 있을 줄 알았으나 '호랑이 나라' 전시를 통해 우리 선조들이 호랑이를 얼마나 믿고 의지하고 좋아하는지를 알게 됐어요. 옛 선조들 주변 어디서든 호랑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곳곳에 나타난 호랑이 모습은 참 다양했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님이 말씀하신 “조선 사람들은 반년 동안 호랑이 사냥을 하고, 나머지 반년 동안은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한다”는 이야기에 우리에게 호랑이는 뗄 수 없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죠. 앞으로 역사를 배울 때나 우리나라 옛 유물을 볼 때, 신화나 설화를 들을 때 이번 전시에서 느꼈던 호랑이의 의미를 잘 되새겨 보겠습니다.
-조하나(서울 반원초 4) 학생모델
-장채원(경기도 이매초 6) 학생기자
저는 동물을 엄청 좋아했음에도 맹수인 호랑이·사자 등에는 깊은 애정을 갖지는 못했는데요. 이번 취재로 호랑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호랑이는 전래동화에서 보듯 무섭지만 어리석은 성격을 갖고 있을 줄 알았으나 '호랑이 나라' 전시를 통해 우리 선조들이 호랑이를 얼마나 믿고 의지하고 좋아하는지를 알게 됐어요. 옛 선조들 주변 어디서든 호랑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곳곳에 나타난 호랑이 모습은 참 다양했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님이 말씀하신 “조선 사람들은 반년 동안 호랑이 사냥을 하고, 나머지 반년 동안은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한다”는 이야기에 우리에게 호랑이는 뗄 수 없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죠. 앞으로 역사를 배울 때나 우리나라 옛 유물을 볼 때, 신화나 설화를 들을 때 이번 전시에서 느꼈던 호랑이의 의미를 잘 되새겨 보겠습니다.
-조하나(서울 반원초 4) 학생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