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코로나19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자택 격리 중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코로나19 비상대응 긴급성명’을 대변인 대독 형태로 발표했다. 발표 일정을 불과 20분 전에 언론에 알렸을 정도로 말 그대로 ‘긴급’하게 나온 성명이었다.
이 성명에서 이 후보는 ‘즉각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등 정부를 향해 코로나19 대응 관련 요구사항들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선보상·선지원’ 요구는 현재 정부의 보상 체계에 큰 변화를 주문한 것이어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당 차원의 법제화 추진으로까지 이어진 이 후보의 ‘선보상, 후정산’ 구상은 이같은 발표가 이뤄지기 불과 하루 전(13일) 보고된 내용 중 채택됐다는 후문이다. 선대위에서 후보 직속 공정시장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채이배 전 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난 13일 우리 위원회가 코로나19 피해보상 관련 3가지 원칙을 후보에게 제안했다”며 “텔레그램으로 중간보고를 드린 거였는데, 그 중 가장 임팩트 있는 ‘선지원, 후정산’ 원칙을 후보가 바로 다음날 긴급성명으로 발표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스마트폰 놓지 않는 李…“후보가 ‘포노 사피엔스’”
이 후보의 이같은 업무 스타일은 선대위가 정책 및 공약을 개발하는 과정에도 자주 적용되고 있다. 특히 이 후보가 시리즈로 내놓고 있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 중에는 각종 창구로 들어오는 제안 중 눈에 띄는 것을 후보가 직접 정책본부에 메신저로 전송, 검토를 지시해 탄생한 것들이 많다고 한다.
예컨대, ‘GMO(유전자변형 농산물) 완전표시제’ 소확행 공약은 이 후보가 11월 27일 전남 강진에서 농민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정책본부에 검토를 지시, 이후 열흘만인 지난달 6일 공약으로 발표됐다. 소확행 공약을 담당하는 선대위 관계자는 “농민들을 만나신 날 밤 늦게 갑자기 ‘GMO 완전표시제를 소확행으로 준비해보라’는 메시지가 왔다”며 “농민 분들을 만나니 이걸 공약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 후보의 직접 지시 외에도, 본인이 받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정책 검토를 지시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말했다.
‘게임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제안을 공약화한 사례도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12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올린 게시글에서 “여러분 목소리를 듣기 위해 시간 나는 대로 게시판을 확인하던 중 게임에 관한 글 하나를 발견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울분의 목소리를 전해주셨다”며 “무엇이 문제인지, 대안은 무엇인지 열심히 공부해봤다”고 적었다. 이어 바로 이튿날 그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를 소확행 공약으로 발표했다.
“숙의 과정 생략“ 우려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국민 여론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민주적인 숙의 과정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제 하에서 청와대는 여론에 느리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다”며 “이 후보처럼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여론을 수렴하는 건, 이런 대통령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정치학)는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기질일 수 있다”면서도 “최근 이 후보의 행보나 메시지를 보면, 찬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숙성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이디어를 국정운영을 할 때도 던지게 될 위험성도 커보인다”고 꼬집었다. 신중해야 할 정책 결정 과정이 자칫 즉흥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다.
→이재명 후보자 정보 https://www.joongang.co.kr/election2022/candidates/LeeJaeM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