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과정을 보여주는 텔레메트리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발사 후 36초부터 특이한 진동이 계측됐으며, 67초에 산화제 탱크의 기체 압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단 엔진 연소시간이 124초인 만큼 1단 발사 과정에서부터 이미 문제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당시 과정을 복기해 보면 누리호가 1, 2단 연소 단계에서 폭발하지 않은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1, 2단 헬륨탱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3단에만 문제가 생긴 것은 산화제 탱크의 구조 차이 때문이라고 항우연은 밝혔다. 1, 2단 산화제 탱크는 길쭉한 실린더 모양인데, 추력이 작은 3단은 원통 모양이다. 이 때문에 헬륨탱크를 부착하는 방식에서 1, 2단과 3단이 달라졌다. 이 과정에서 비행 중 발생하는 부력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3단 헬륨탱크가 떨어져 나왔다는 게 항우연의 설명이다. 결국 탱크 고정장치 설계 과정에서 초보적인 설계 오류가 있었으며, 발사체개발본부 내 어느 누구도 이 같은 잘못을 잡아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누리호 1차 발사의 실패 원인이 작은 부품의 기초설계 오류였다. 오류를 잡아낼 내·외부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1986년 발사 직후 폭발해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한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사고도 접합용 패킹의 일종인 O링에 문제가 있었고, 이 문제를 제기한 실무자의 의견을 무시한 의사결정권자의 판단이 빚은 참사였다. 누리호는 앞으로도 다섯 차례의 추가 발사를 앞두고 있다. 지난 10여 년 누리호 개발에 진력해 온 항우연 과학기술인의 노력을 응원하는 한편, 단순한 부품 하나도 설계에서 검증까지 기본에 충실할 것을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