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서소문 포럼] 부동산 정책을 정말 잘했다고?

중앙일보

입력 2021.12.2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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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정 경제에디터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차피 상당 부분 바뀔 거라 ‘2022 경제정책방향’이 예년만큼 눈길을 끌지는 못했지만, 통상과 다른 내용이 있었다. 이번 발표엔 문재인 정부 4년 반의 경제성과 자평이 담겨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2022 경제정책방향’ 에는 2017~2021 대내외 경제 여건과 정책 대응을 정리한 표가 있다. 저성장·양극화, 일본 수출규제, 코로나19 위기에 안전망 확충, 소·부·장 경쟁력 강화, 추경과 과감한 선제 지원 등으로 대응했다는 내용이다.
 
그 표에 부동산 정책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다. 2017년 7월 낸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 부동산시장 대응책이 있고, 그동안 30번 가까운 대책을 냈는데, 이번 발표에 빠진 것은 사안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언급하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같은 자료에 있는 ‘문재인 정부 경제 분야 주요 성과’에도 부동산 분야는 없다.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날 같이 발표된 ‘문재인 정부 경제 분야 36대 성과’라는 별도 자료에 관련 내용이 있다.
문재인 정부 ‘주거안정’ 자화자찬
집값 등 시장은 여전히 혼돈상태
관련 세법도 신중하게 처리하고
대선 의식한 땜질처방 중단해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5차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1번 ‘코로나 대응 모범국가’로 시작하는 ‘36대 성과’의 26번째가 ‘주거안정(도모)’이다. 36대 성과 제목만 있는 페이지엔 ‘주거안정 도모’인데 내용을 담은 본문 제목은 ‘주거안정’이다. ‘도모’의 삽입 여부를 놓고 고민한 건지, 실수로 빠진 건지는 모르겠다.  ‘주거안정(도모)’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투기 수요 차단을 위해 세제·금융 제도 전반을 정비했다.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풍부한 유동성, 가구 분화 확대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주택가격 상승세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기존 수요관리 정책 효과를 바탕으로 주택공급, 가계부채관리, 기준금리 인상 등 여건 변화에 따라 가격 상승폭이 둔화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 관리를 잘했다는 거다.
 
이 정부가 주거안정을 도모했는지는 몰라도 주거안정을 이뤘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30번에 가까운 정책의 부작용도 상당하다. 대통령도 몇 번 사과했다. 부동산 관련 정책을 둘러싸고 갈팡질팡하는 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각종 세금과 연계된 내년도 표준주택 공시가격과 표준지(토지) 공시가격 열람이 시작되면서 세금폭탄 얘기가 나온다. 서울의 단독주택 상승률은 10%가 넘는다. 내년에 공개되는 공동주택 상승률은 더 높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공시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이 있지만, 고쳐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의 경우 반영률 0.7%다. 당정은 내년 3월 세부담 완화방안을 발표한다고 한다.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땜질 처방이다. 내년엔 어찌 세금이 줄어도 후년엔 확 늘 거란 전망도 나온다.


집값 상승으로 인한 세부담 증가와 반발은 우리만의 얘기는 아니다.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있었던 ‘주민발의13(California Proposition 13)’이 대표적이다. 캘리포니아에선 1970년대 주택평가액이 높아지고 재산세 부담이 늘면서 세금 때문에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까지 생겼다. 반발이 거셌고 주민발의13이 나왔다. 핵심 내용은 이렇다. 재산세 세율 상한을 설정한다. 재산가치 평가의 기준연도를 1975년으로 정하고 연간평가액 증가는 2%를 넘지 않는 선에서 이뤄지도록 한다. 재산평가의 기준연도는 소유권 변동이나 주택 신축이 이뤄진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한다. 소유권이 바뀌는 경우 그 재산은 시장가치로 평가되고 이는 이후 평가의 출발점이 된다. 주민발의13의 취득가액 평가 기준은 상당한 논란을 부르며 소송으로 이어졌는데 1992년 연방대법원은 합헌으로 판시했다. 주민발의13은 부작용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재산세 부담으로 인한 주거 불안정성 초래를 막고 재산세 부담 변화에 대한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원윤희 『역사 속의 세금 이야기』). 지금 우리와 사정이 다르지만, 주거안정성 보장과 세 부담 예측 취지는 본받을 만하다.
 
국가란 결국은 세금이다. 나라살림에 돈이 필요하니 세금은 내야 하는 건데 세금 관련법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국민이 힘들게 번 돈을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양도세와 보유세 같은 세금 문제를 번갯불에 콩 볶듯이 다룬다. 제대로 된 논의도 없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얼마 전 ‘불공정한 세제’ ‘복잡한 세법과 잦은 개정’ 등 ‘정부 신뢰를 낮추는 10가지’를 발표하면서 이는 곧 ‘세금 신뢰를 낮추는 10가지’ ‘세금이 내기 싫어지는 10가지’와 같은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