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80년 1월 소장 진급과 함께 광주 제31향토사단장으로 부임했다. 5·18 민주화운동 초기 강경 유혈 진압 지시를 거부했다가 해임된 뒤 예편까지 당했다.
81년 제11대 총선에 무소속 출마했지만, 외부 강압으로 중도 사퇴했다. 88년 광주 북구에 평민당 후보로 출마해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득표율은 91.45%였다. 같은 해 평민당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장을 맡았다.
고인은 최근까지 회고록을 집필했다. 회고록엔 80년 5월19일 낮에 광주 지역 기관장들로부터 “이러다가는 광주시민들 다 죽이겠다”는 말을 들은 뒤 그날 밤 사단 작전참모를 불러 “상부의 강경진압명령을 무혈진압명령으로 전환하여 작전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진압시 국민이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고 적었다.
유족은 부인 전성원(전 한기총 여성위원장)씨와 사이에 2남 대균(경희대 유전생명공학과 교수)·성균(신한대 치위생학과 교수), 며느리 이현미(웨스트민스터대학교대학원 특임교수)·윤정현(중앙성결교회 오르가니스트)씨 등. 빈소는 강남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