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까지 본지 기자 총 18명을 상대로 41회에 걸친 통신조회를 벌인 것을 포함해 17개사 이상 매체 102명 이상의 언론인이 199회 넘게 통신 조회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해 박성민‧박수영‧서일준‧윤한홍‧이양수‧조수진 등 7명의 야당 국회의원들도 무더기로 통신조회를 당했다. 심지어 TV조선 법조팀 기자의 가족(어머니와 동생)을 상대로도 6차례나 통신조회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공수처, 왜 기자 어머니·동생까지 통신조회했나
공수처는 보도 직후 송모 수사관 등을 에스코트 현장에 보내 민간 건물 CCTV 관리자에게 영상 제공 경위를 뒷조사했지만 수사팀과 관련성을 확인하지 못했다. 수원지검 역시 “CCTV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자 공수처는 법원의 영장(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허가)을 받아 해당 기자의 휴대전화 착·발신 통화내역 전체를 들여다봤다고 한다. 공수처는 그간 “수사 대상자의 통화 상대방을 확인하는 차원의 적법 절차”라고 해왔지만, 기자 가족이 공수처가 수사 대상으로 삼아온 검사 등 법조인들과 통화했을 가능성이 전무해 기자를 직접 표적 내사한 셈이다.
‘통신사실 확인자료’는 이름‧주소 등 가입자 정보만을 알 수 있는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자료 조회’와 달리 대상자의 구체적인 착발신 통화내역·문자 일시 및 해당 시각 관할 기지국 위치정보 등을 담고 있어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관할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 공수처가 해당 기자의 통화내역 등을 확보하기 위해 강제수사를 벌인 것이다.
황제 조사 CCTV가 ‘공무상 비밀’?…대법원 판례 “NO”
게다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공무상 비밀 그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비밀누설에 의해 위협받는 국가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바꿔 말해 이성윤 고검장의 ‘황제 조사’ 영상 보도로 인해 국가 기능이 저해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공무상 비밀누설’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공수처 주장대로 공무상 비밀누설죄가 성립하더라도 취재 기자 뒷조사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대법원 판례상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누설 상대방은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형법 제127조(공무상 비밀누설)는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만을 처벌하고 있을 뿐 직무상 비밀을 누설받은 상대방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고 돼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공수처의 무리한 법리 해석이 담긴 기자 통신 영장을 발부해준 판사에 대한 궁금증도 모아지고 있다. 실제로 한동안 법조계에서는 “공수처 영장은 무조건 나온다”란 뒷말도 돌기도 했다.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을 놓고도 공수처가 수사팀을 떠난 검사 2명까지 대상에 포함하는 허위사실을 기재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영장 발부 판사가 판사 출신인 여운국 공수처 차장과 과거 3차례 함께 근무한 이력이 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검사는 “‘이성윤 공소장 유출 수사’와 똑같은 구조의 무리한 공무상 비밀 누설 수사”라며 “마치 간통죄를 내사하는 것처럼 애초에 죄가 성립할 수 없는 건으로 수사를 벌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법조인은 “법원을 기망하지 않고서야 발부될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한 통신 영장”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