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당시 넘긴 사건 중 하나는 수원지검 형사3부가 수사 중이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긴급출국금지 의혹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수사 중이던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및 유출 의혹 사건이었다. 중앙지검 형사1부 사건은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관여 의혹도 제기돼 ‘청와대 기획 사정(司正)’ 의혹이란 별칭으로도 불렸다. 두 사건의 핵심 피의자는 동일인이었다. 2018~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김학의 전 차관 별장 성(性) 접대 의혹 사건을 재조사했던 이규원(44·사법연수원 36기) 대전지검 부부장검사다.
“이 사건과 같은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 공수처 제도의 취지나 공수처법의 취지에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재 수사처가 구성 중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중략) 국민 여러분의 너른 이해를 구합니다.”
중앙지검이 ‘청와대 기획 사정’ 의혹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한 건 그로부터 닷새 뒤인 3월 17일의 일이다. 공수처 검사·수사관을 선발하고 있다는 사정은 변한 게 없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공수처는 이 사건을 직접 수사하기로 하고 정식 입건(공제 3호)했다.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 재판(지난 6월 15일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나온 검찰 측 주장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이규원 검사를 조사하기 직전에 공수처로 사건을 이첩했고, 당시는 이 검사만 조사하면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과) 병합기소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로부터 5개월 뒤 지난 17일 공수처는 이 사건을 결론 내지 않고 그대로 다시 중앙지검 형사1부로 보냈다. 공수처는 “수사 종결 후 동일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과 협의를 거쳐 피의자 등 사건 관계인에 대한 ‘합일적 처분’을 위해 이첩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수사는 끝냈지만, 명예훼손 사건을 가진 검찰이 최종 처분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보낸 수사기록에 처분에 관한 의견을 적시했다고도 했는데, 기소 의견인지 불기소 의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공수처의 현직 검사 수사 1호란 상징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검찰에 칼을 반납한 셈이다.
공수처가 포기한 건 또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번 이첩 방식에 대해 “단순 이첩”이라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3월 12일 수원지검에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을 재이첩하면서는 “수사 후 송치하라”고 요구하며 공수처가 공소제기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공소권 유보부 이첩’을 주장했다(※검찰은 이를 거부하고 이 고검장과 이 검사에 대한 기소를 강행했다). 그런데 이번엔 거꾸로 공수처가 수사를 마친 뒤 공소제기 여부를 검찰이 판단하라고 떠넘겼다. 일관성을 잃은 선택적 공소권 행사의 전례를 만들었다.
공수처가 처음부터 ‘수사 여력’ ‘합일적 처분’ 같은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장장 9개월간 수사를 끌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사건은 위법 논란을 불사하고 수사하고, 어떤 사건은 마냥 뭉개고, 또 다른 사건은 기껏 수사를 마친 뒤에 처분권을 포기하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누구도 이 같은 물음에 책임 있고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게 출범 11개월을 맞은 공수처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