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은 살아있다”…ATM기에서 보이스피싱범 잡은 50대 경찰

중앙일보

입력 2021.12.17 11:07

수정 2021.12.1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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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1년 6개월 앞둔 노장 경찰관이 오랜 수사경찰관 경험을 살려 현금 자동입출금기(ATM)에서 거액을 송금하는 보이스피싱범을 붙잡았다. 주인공은 부산 연제경찰서 수사심사관 정찬오(58) 경감. 

보이스피싱범ㅇF 잡은 정찬오 경감. [연제경찰서]

 
그는 지난 15일 오후 2시 30분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3차 접종(부스터 샷)을 하기 위해 연산동 국민은행 ATM기 앞을 지나다 5만원권을 쌓아놓고 입금하는 20대 남성 A씨를 발견했다. 모자와 마스크를 쓴 A씨는 연거푸 호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는 등 송금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ATM기 앞에서 보이스피싱범을 유심히 지켜보는 정찬오 경감. [사진 부산경찰청]

잠시 지켜본 정 경감은 오랜 수사 경험에서 보이스피싱범임을 직감했다. 이어 “빨리 출동해달라”며 112신고를 하고, 다른 경찰관이 출동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겠다며 ATM기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나도 급하게 돈을 찾아야 한다. 왜 많은 돈을 여기서 입금하느냐”며 따져 물었다. 순간 당황한 A씨는 입금을 멈추고 “지인에게 급히 돈을 보낼 일 있다. 급하다”며 정 경감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잠시 자리를 물려받은 정 경감은 A씨를 옆에 세워놓고 돈을 인출하는 척 카드를 넣었다 뺐다 하며 시간을 끌었다.

출동한 경찰관과 얘기를 나누는 정찬오 경감(왼쪽). [부산경찰청]

채 5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인근 토곡지구대 경찰관과 강력팀 형사 등 3명이 출동했다. 출동 경찰은 A씨 신원과 송금하고 남은 돈 2200만원의 출처를 따져 물었다. A씨는 처음에는 부인했지만, 피해자에게서 2400만원을 전달받아 200만원을 송금하고 남은 돈을 계속 입금하던 중이었다.
 

범인을 인계한 뒤 코로나 19 예방접종을 마쳤다는 정 경감은 경찰 생활 35년 중 26년을 수사부서에 근무한 베테랑 경찰관이다. 정년도 1년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정 경감은 “경찰의 촉은 어쩔 수 없나 보다”며 “보이스피싱범을 발견하고 빨리 검거해 거액을 다시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부산 연제경찰서는 A씨를 조사해 사기 혐의 등으로 A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