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생인 김영주는 60년대 후반엔 정치국 위원 겸 비서국 비서로 사실상 ‘넘버 2’ 역할을 했다. 남북 최초의 당국 간 합의문인 7·4 남북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이 성명의 이행을 위해 설치한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위원장을 맡았다.
조카인 김정일과의 후계 경쟁에서 밀리면서 73년 자취를 감췄다. 20년이 지난 93년, 김 주석 사망 직전 국가 부주석으로 복귀했지만, 김정일 체제가 공식 출범한 98년 최고인민회의 명예부위원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