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4일(현지시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3개국 중 첫 순방지인 인도네시아에서 미국의 인도ㆍ태평양(인태) 전략의 핵심 5대 요소를 공개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 2011년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기조를 호주에서 발표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미국의 최우선순위"라고 천명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다.
이날 블링컨 장관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대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ㆍ태평양'을 주제로 연설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후 국무부의 대응이었다.
같은 날 미 국무부는 이 연설을 토대로 한 '팩트시트'(Fact Sheetㆍ설명서)를 공개했는데, 직후 주한 미국 대사관은 한국어 번역본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이뤄진 정책발표 내용을 한국어로 급히 소개한 것은 이를 한국 국민에 널리 알리겠다는 의도가 담긴 셈인데, 역시 방점은 중국 견제에 있었다.
한ㆍ미 상호방위조약 ‘진화’ 예고?
동맹 자체가 조약 체결을 통해 형성된다. 그럼에도 블링컨 장관이 이날 굳이 '조약동맹'(treaty alliance)으로 새삼스레 강조해 표현한 건 그만큼 동맹의 중요성과 대체 불가성을 강조하는 의도란 평가다. 이는 주로 한반도 범위 내에서 작동하던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범위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범위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한ㆍ미 상호방위조약에서 이미 양국이 태평양 지역의 무력 공격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듯이, 기존에 한반도 중심으로 운용되던 한ㆍ미 동맹을 인도ㆍ태평양 지역 차원의 동맹으로 실질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5월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한ㆍ미 관계의 중요성은 한반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라며 "이는 인·태 지역에 대한 각자의 접근법에 기반을 둔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한국은 블링컨 장관이 언급한 5개의 '조약 동맹' 중 호주와 일본 다음으로 세 번째에 언급됐다. 이와 관련, 중국 견제에 있어 미국이 동맹에 부여하는 우선 순위나 기대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동맹ㆍ파트너 밀접 연계...통합 억지력 전략"
블링컨 장관이 "미국은 '통합 억지력'(integrated deterrence) 전략을 채택해, 미국의 국력을 동맹 및 파트너의 국력과 긴밀히 엮어내겠다"고 밝힌 것 또한 지역별 소다자 안보 연합을 기반으로 중국의 군사력 부상에 대응하려는 정책이란 평가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 간 협력 관계를 제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중국은 적어도 인·태지역에서만큼은 미국의 영향력을 줄여보고자 하지만, 미국은 이에 맞서서 인·태 지역의 중심 국가로 공고히 뿌리 내리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中 일대일로 견제 의지 명확
이어 "우리는 인태지역이 추구하는 양질의 높은 수준의 인프라를 제공할 것"이라며 "6월에 주요 7개국(G7) 파트너들과 함께 시작한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ㆍB3W)은 투명하고 지속 가능한 자금 조달을 통해 향후 수천억 달러를 동원할 것을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B3W 정책은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하기 위한 글로벌 투자 프로젝트다. 투명성과 양질을 언급한 건 중국이 일대일로의 일환으로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건설 사업 등을 진행하며 실제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떠안기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방한 美 경제차관, 공급망ㆍ인프라 협력 강조 행보
그는 방한 기간 윤태식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등 경제 부처 고위 관계자와도 만난다. 이외에도 건설ㆍ인프라 관련 국내 기업과의 면담도 조율 중이다.
지난달 방한한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 국무부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 최근 방한하는 미 국무부 관계자들은 외교뿐 아니라 경제ㆍ통상 담당자들을 두루 만나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글로벌 공급망 및 인프라 구축에 한국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구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