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CPTPP 가입, 결국 다음 정부로 넘기나

중앙일보

입력 2021.12.1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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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농민의 길과 전국민중행동이 공동 주최한 CPTPP 가입논의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회견 참석단체 대표자들은 "정부의 'CPTTP' 가입 논의가 국민의 건강권과 농업을 포기하는 선언이다"라며 "최종 가입 공식화를 중단"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정권 5개월 남기고 이제야 “논의 착수”  

다자간 자유무역 소외되면 기업만 손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제 대외경제장관 회의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협정 가입을 위한 여론 수렴과 사회적 논의에 착수할 계획”이라며 “다양한 이해관계자 등과의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관련 절차를 개시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홍 부총리 발언은 ‘CPTPP 가입 본격 추진’이지만,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정부의 ‘여론 수렴과 사회적 논의 착수’는 이 정부 내에서는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가입 검토”를 얘기했고, 홍 부총리도 “11월 초에 CPTPP 가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발언과 비교하면 너무 지연된 감이 있다. 더구나 CPTPP 가입에는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하고, 조건이 까다로워 지금 신청해도 최소 2년 이상 걸린다는 점에서, 홍 부총리의 발언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CPTPP에 반대하는 농민 등 여론 눈치보기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CPTPP는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한 후인 2018년 일본이 주도하고 호주 등 나머지 국가가 중심이 돼 출범시킨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일본을 필두로 캐나다·호주·브루나이·싱가포르·멕시코·베트남·뉴질랜드·칠레·페루·말레이시아 등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개방 수준도 다른 FTA에 비해 상당히 높다. 올해 9월 중국과 대만이 가입을 신청하면서 전략적 중요성이 더 커졌다.  
 
CPTPP 11개국의 무역 규모는 2019년 기준 세계 무역의 15%를 차지한다. 인구로 보면 6억9000만 명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다. CPTPP 가입국은 역내 자유무역을 통해 시장 다변화와 공급망 강화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지나치게 높은 대중국 수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FTA를 맺지 않은 일본·멕시코와 FTA를 맺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한국처럼 여기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의 기업은 원부자재 공급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 세계 10대 무역 대국이지만 그간 일본이 주도하는 CPTPP 가입에 소극적이었다. 역내 다자간 자유무역으로 농업 부문 타격이 우려된다는 점에서였다. 하지만 더 이상 CPTPP 가입을 늦춰서는 안 된다. 중국·대만까지 뛰어든 역내 다자간 자유무역에 소외될 경우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 기업들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건 자명하다. 일본이 CPTPP를 주도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가입 추진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한·일 관계 개선에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대선을 앞둔 여론 눈치보기가 아닌, 실제 가입을 위한 구체적 계획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