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국가도 아니다" 격한 성토 쏟아낸 尹, 타깃은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2021.12.13 05:00

수정 2021.12.1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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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국가도 아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1일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강원도 선대위 발대식’에서 한 말이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문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대장동 의혹’ 검찰 수사를 성토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제1야당의 대선후보임을 감안하더라도 현 정부에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그가 두 차례나 “국가도 아니다”고 강한 톤으로 비판한 건 이례적이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저는 법조인이라는 공직을 천생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국민의 열망과 부름을 제가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정치에 적극적이었다기보단, 정부 실정(失政)에 신음하는 국민이 자신을 정치권으로 불러냈다는 의미다. 해당 발언에 대해 윤 후보 측 인사는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치 회복과 국민 보호라는 윤석열의 소명의식과 정치 철학이 잘 드러난 발언”이라고 부연했다.
 
그가 유력 야당의 대선 주자가 된 배경도 이와 직결된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법치와 공정의 가치가 흔들린다는 여론 속에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대립하면서도 소신을 지켰고, 이런 과정을 지켜본 국민의 뇌리엔 윤석열 이란 이름 석 자가 새겨졌다. 그런 만큼 당시 상황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게 윤 후보의 구상이라고 한다. 지난 3월 4일 검찰총장에서 물러나면서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앞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거리 플렛폼74에서 열린 청년문화예술인간담회를 마친 뒤 거리인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그렇다면 윤 후보가 말하는 법치 회복은 뭘까. 윤 후보와 가까운 한 인사는 “최근 윤 후보가 '지금까지 대통령의 지위는 헌법 위의 제왕적 대통령이었다. 이를 헌법 테두리 안, 본래의 자리로 원위치시키겠다'고 하더라”며 “이를 위해선 청와대 권한 내려놓기와 권력 분산이 병행돼야 한다는 게 윤 후보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런 윤 후보의 '대통령관'은 지난 7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만났을 때도 묻어났다. 당시 윤 후보는 “대통령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건 헌법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과 법의 지배를 심각하게 저해한다”고 말했고, 최 교수는 “대통령의 권력을 하향·분산시켜야 하는 점은 맞다. 다만, 개헌보다는 현행 헌법의 틀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헌법 틀 안에 있는 총리의 역할이 보장되면 내각의 결정권이 많아지고, 집중된 청와대의 권한을 줄일 수 있다는 교수님의 지적에 공감한다”고 호응했다. 윤 후보 측 관계자는 “윤 후보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몸소 체감한 데다, 정치선언 후 진보진영의 거목인 최 교수 등의 조언을 받아가며 나름의 정치 철학을 형성해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0일 오후 강원 강릉중앙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각론에선 차이가 있지만, 다수의 정치권 원로들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지적한다. '친노무현계'였던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통화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하지 않고서 다른 것들을 개혁한다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게 내가 김대중 정부 때부터 강조해 온 지론”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출신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사람만 바뀐다고 제왕적 대통령제가 개혁되진 않을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