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 박사는 낙엽조차 함부로 밟지 않습니다.
연구실로 오가는 길에 널브러진 낙엽을
치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 이유가 뭘까요?
추적추적 진눈깨비 흩날리는 날,
이 박사가 낙엽을 들추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뭔가가 나타났습니다.
낙엽과 같은 보호색을 띤 친구라
얼른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만,
분명 살아있는 그 무엇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습니다.
이 박사가 왕침노린재라고 일러줬습니다.
참 자연은 신비롭습니다.
이 추운 겨울,
낙엽 더미 속에서 월동하는 겁니다.
이 박사가 낙엽을 치우지 않으며,
걸음걸이에 늘 조심성이 밴 이유였습니다.
이 박사가 들려주는 왕침노린재의 특성은 꽤 독특합니다.
“보통 노린재라고 하면 아주 고약한 냄새,
즉 노린내로 자기를 방어하는 애들인데
이 친구는 침으로 공격하고 방어합니다.
말 그대로 침노린재,
영명으로 ‘어쎄신 버그’라고 하거든요.
뒤에서 확 찔러서 잡아먹는 암살자인 거죠.
뾰족한 입으로 곤충을 찔러서 물장군처럼 흡습하죠.
냄새가 아니고 찔러서 잡아먹는 강력한 포식자입니다.”
마침 움직이다가 뒤집어진 친구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숨겨진 왕침이 확연히 사진에 찍혔습니다.
바로 ‘암살자의 침’입니다.
그런데 겨울엔 이 ‘암살자의 침이 무용지물입니다.
그들이 사냥할 곤충이 없으니까요.
이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낼까요?
“아무래도 몸에 얼지 않는 물질을 갖고 있을 것이고요.
아니면 이런 나뭇잎 사이사이에 숨어서
온도 변화를 좀 적게 하는 그런 전략을 쓰는 겁니다.
겨울에 먹이 활동을 못 하니 버티는 거죠.
살아 내기만 하는 거죠.”
암살자의 삶이 참 처연합니다.
이 박사의 설명을 듣자마자
낙엽을 덮어줬습니다.
부디 이 겨울을 버텨 살아내기를 바라면서요.
자문 및 감수/ 이강운 서울대 농학박사(곤충학),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