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뒤 도출한 공동성명에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를 명시했다. 이는 미국 측이 한국의 입장을 수용한 결과로, 문 대통령이 그간 지향해 온 대북 접근법에 바이든 대통령 역시 동의한다는 점을 대내외에 알리는 상징적 문구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반영하며 사실상의 반대급부로 요구한 건 중국을 노린 ‘가치외교 동참’이었다. 당시 공동성명엔 “인권과 법치 증진의 의지를 공유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양측은 한·미 간 민주주의·거버넌스 협의체(DGC)도 구축하기로 했다. DGC는 국내외 인권 및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양국 간 소통·조율 창구 역할을 한다. 가치외교를 매개로 사실상 한·미 양국이 함께 중국 압박에 활용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축하는 데 합의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회의 첫날인 9일 참여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단순 참여 여부가 아니라 문 대통령의 발언 내용 등에 따라 한국의 진정성을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보이콧 검토 안 한다"…막다른 길 자초한 韓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8일 기자들과 만나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과 관련 “우리 정부로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우리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이 동북아와 세계 평화번영 및 남북관계에 기여한다는 기본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다른 동맹국과 우방국들이 "검토 중"이라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같은 입장은 한국이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란 중국 측 기대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실제 과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당시에도 중국이 가장 크게 문제삼은 부분은 한국 측이 수차례에 걸쳐 “사드 배치 문제는 미국과 논의하지도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발을 뺐다는 점이었다. 중국 입장에선 사드 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다 갑작스레 배치 결정이 내려지자 신뢰가 깨졌다고 인식했고, 거세게 사드 보복에 나섰다.
정부 차원의 핵심 의제인 북핵 해결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과 중국 양쪽의 협력 모두 절실한 문 대통령으로서는 딜레마가 클 수밖에 없다.
사실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도,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도 모두 예견됐던 상황이다.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대비 또한 이미 돼 있어야 정상이란 뜻이다. 이와 관련, 문 정부가 임기말 남북관계 개선과 종전선언 등에만 몰두한 나머지 미·중 간 전략적 갈등이란 큰 그림을 정교하게 읽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편 문 대통령은 오는 12일 3박 4일 일정으로 호주를 국빈 방문한다. 호주는 대중 견제 성격의 쿼드(Quad, 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 4개국 안보 협의체) 및 중국을 겨냥한 신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 미국ㆍ호주ㆍ영국) 회원국으로 바이든이 구축한 반중 연대의 최일선에 있다. 문 대통령의 호주 방문을 계기로 양국 간 대중 인식 차이가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