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은 여러모로 괴이하지만 ‘진보 vs 보수’ 구도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선 슬프기까지 하다. 각자가 악다구니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 다를 뿐인 ‘수구A vs 수구B’의 대결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진보야말로 소중한 가치일진데, 대한민국의 2022년 봄날이 벌써 우울한 건 마음이 너무 앞서는 것이기를 바란다.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처럼, 대한민국의 진보는, 진보인 연(然)하는 이들에게 도둑맞았다. 한때는 진보의 얼굴이었을지 몰라도 이젠 진보의 탈을 쓰고 수구 세력이 돼버린 이들에게.
야당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진보와는 동떨어진 개인의 앙갚음과, 다양한 기득권을 되찾고자 하는 모습이 도드라진다. ‘적폐 청산’이라는 가시투성이 뫼비우스의 띠에 한국 정치가, 한국이라는 나라가 갇힌 것은 아닌지, 그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걱정스러울 뿐이다.
올 2월 별세한 고(故)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식사 때마다 “국민은 위대하다”고 강조하곤 했다. 매번 옳지는 않았으나 중요한 시기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것은 한국 유권자들이었다는 주장이었다. 정치인들에게 기회를 주다가도 고삐가 풀렸다 싶을 때 단죄를 하는 게 대한민국 민심이라 했다. 내년 3월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들려오는 소식은 죄다 블랙 코미디인 2021년 12월이 유난히 삭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