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관련법을 제정한 후 30년간 진행돼 온 프로젝트다. 처음부터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쳤고, 뷔르 지역이 부지로 선정된 이후 2004년부터 연구시설을 가동해 지금까지 17년째 실증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처럼 정권에 상관없이 진행돼 온 결과 시제오는 2025년부터 실제 방폐장 건설을 시작,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 나온 방사성폐기물을 보관하기 시작한다.
과학자 수십명이 지하갱도서 연구
안드라 측의 안내를 받아 안전장치를 입고 지하 500m 갱도로 내려갔다. 지름 5m 가량의 터널형 갱도가 조밀하게 엮인 ‘지하도시’가 나타났다. 회색 점토를 실은 지게차들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갱도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지름 10m 가량으로 넓혀진 터널이 나타났다. 이곳에선 '처분공'(폐연료봉을 보관할 장소)의 안전성을 실험하기 위해 굴착기가 점토를 파내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는 방폐물을 수천년간 저장해도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이곳에 처분장을 마련했다. 이유는 지질학적 요인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지형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두꺼운 점토층으로 이뤄져 있다. 점토층은 물의 침투가 일어나지 않고, 방사능을 차폐하는 기능을 발휘한다고 안드라 관계자는 설명했다.
100년 뒤 발달할 기술까지 감안
안드라는 현재까지 연구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판단, 내년에 법령제정 허가를 요청할 계획이다. 2025년 처분장건설허가법령이 제정되면 실험 갱도와 같은 실제 처분 갱도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후에도 20년 동안 파일럿 실험을 거쳐 결산 보고를 한 뒤 본격적으로 장수명 중준위폐기물, 고준위방폐물을 묻을 예정이다. 먼저 장수명 중준위폐기물부터 매립하기 시작해, 고준위 폐기물은 2080년부터 저장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2150년에는 방폐물이 이 부지에 전부 채워진다. 이곳에는 고준위폐기물 1만㎥, 장수명 중준위폐기물 7만3000㎥를 저장할 수 있다. 프랑스 원전이 지금까지 생산한 폐기물을 다 채우고도 저장 용량의 절반이 남는다.
프랑스는 자국 에너지의 원전 비중을 현재 75%에서 2050년 50%까지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원전 전 생애주기의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는 여전히 확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원전이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지역에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원전을 가동하는 국가가 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방폐물을 안전하게 처분하는 일이다. 프랑스는 이같은 초대형 방폐장을 건설하기까지 30여년에 걸친 준비 과정을 거쳤다.
한국도 시급한 방폐물 처리…佛, 주민 신뢰 어떻게 얻었나
프랑스 국민은 원전 시설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 지역에서도 방폐장 건설에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국가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까지 투명한 정보 공개와 의견 수렴과정, 과학적 안전장치 마련에 부단히 애를 썼다. 시제오 프로젝트도 두 차례에 걸친 대국민 공개토론과, 각종 공청회, 이해 당사자 간의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신뢰를 얻어왔다. 규제기관인 프랑스 원자력안전청(ASN)이 꾸준히 실사한 뒤 관련 정보를 지역 주민들에게 공개한다.
국가 차원에서 지역에 재정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인센티브에도 후하다. 안드라 관계자에 따르면 방폐장이 있거나 가까운 뫼즈와 오트망 등 2개 도(인구 총 36만)에 현재 기준 연간 3000만 유로(약 400억원)를 매년 투자할 예정이다. 프랑스는 이 지역에 지하연구시설이 처음 들어설 때부터 방폐물 관리기금을 조성해 중소기업 육성 등에 투자해왔다.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폐기물은 줄이고 또 줄여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국으로서는 일단 현재 가진 사용후핵연료라도 안전하게 처리하는 일이 시급하다"며 "그러려면 지하 연구시설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 교수는 "관리 계획 법령을 차근차근 만들고 시한을 정해야 현재 낙후한 연구도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