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만 해도 신문엔 독자만화 투고가 가능했는데, 20대 청년이던 그 역시 만화를 그려 보냈다. 이렇게 눈에 띈 그는 ‘도깨비 감투’(1972년)로 주목을 받는다. 1979년 어린이 잡지 ‘소년중앙’에 새 만화를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로봇찌빠’. “미국의 어떤 로봇 제작회사에서 로봇을 만들었는데, 그 녀석이 어디로 도망쳤다는구나.” 설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빠가 펼쳐 든 신문에 등장한 도망친 로봇. 무려 미국에서 태어난 그 로봇이 한국에 있는 팔팔이네 집에 등장한다. 똑똑한 로봇이면 좋으련만,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다.
로봇 이름은 찌빠. 늘어나는 긴 팔, 코는 돼지코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이 코는 특히나 만능이었다. 미사일도 쏘고 영상도 보여줬다. 아이들이 그렇듯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며 찌빠는 팔팔이와 우정을 나눈다.
‘로봇찌빠’는 1980~90년대 아이들의 친구였다. 십수년간 연재가 이어지며 아이들을 위한 일상의 웃음을 대변하는 ‘명랑만화’ 장르를 대표하는 대표작이 됐다. 2010년대엔 TV 만화로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다. ‘소년중앙’에 실리고 난 원고를 받아다 1편부터 모아왔을 정도로 신문수 화백은 찌빠에 대한 애정이 컸다.
찌빠를 그린 한국 만화의 대부, 신문수 화백이 82세 나이로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찌빠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돼 부모의 자리에 섰다. 명랑만화가 가득 채웠던 아이들의 손엔 이제 수학이니, 영어니, 한자니 ‘학습’이란 이름을 단 만화책과 스마트폰으로 보는 웹툰이 들어서 있다. 세월은 변했지만 “인간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며 아이들을 위해 그가 그려온 찌빠 이야기는 우리에게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