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가 대선 후보와 갈등 때문에 지방으로 가버린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선 후보와 갈등으로 모든 일정을 보이콧하고 부산으로 떠나자 국민의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대선 후보가 선출되면 모든 당무의 우선권을 후보가 갖는데, 당대표가 너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토로였다. 당 내엔 이번 갈등 폭발이 정권교체 가능성을 줄일까 노심초사하는 위기감이 역력하다.
당대표와 대선 후보가 충돌한 초유의 사태. 그 배경을 그동안의 대선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당내 권력 구도에서 찾는 분석이 있다. 과거 대선을 보면 대선 후보는 당내 정치적 지분이나 인지도 면에서 당대표에 비해 월등히 앞섰다. 이 때문에 당대표는 직접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주로 대선 관리를 했다. 2007년 대선 때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2012년 대선 때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등이 그랬다. 이들과 대선 후보의 크고 작은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과거 관리형 대표와는 결이 다르다. 20·30세대 지지의 바람을 타고 당선된 그는 젊은 층에겐 소위 ‘스타 정치인’이다. 청년에게 외면받던 국민의힘 지지층 구성에서도 변화를 만들어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이 대표가 지난 6월 취임하고 한 달 만에 당원이 약 2만3000명 늘었는데 이 중 20·30세대가 8500여명이었다. 확실한 세대적 지지 기반을 갖고 있는 셈이다. 청년 표심에 관한 지분 때문에 당내에선 “의심할 여지 없는 차차기 대선 주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청년 표심이 캐스팅 보트(결정적 표)로 떠오르는 이번 대선 구도도 이 대표에게 힘이 되고 있다. 청년 표심을 얻기 위해선 이 대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국민의힘엔 있다. 윤 후보가 이 대표에게 선대위의 ‘얼굴’인 홍보미디어본부장을 맡긴 건 이 때문이다. 경선 때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대선 후보가 되면) 이 대표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년층 지지로 이 대표의 입지가 과거 대표들보다 탄탄해진 반면 윤 후보의 당내 위상은 과거 후보들과 비교해면 단단한 편이 아니다. 2007년 대선에서 당선된 이명박 후보의 경우 보수당 당적으로 두 번의 국회의원과 한 번의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2012년 대선 땐 보수당의 정신적 구심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아버지로 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보였다.
사상 초유의 격한 충돌엔 이런 구조적 요인 뿐만 아니라 이 대표 특유의 캐릭터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갈등 상황에서 갈등을 봉합하기보다는 정면 돌파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곤 했던 '이준석 스타일' 역시 원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경선 과정에서 이 대표와 원희룡 전 지사의 녹취록 공방이 대표적이다. 원 전 지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표가 통화에서 ‘윤석열 곧 정리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발표하자, 이 대표는 녹취록을 공개하며 정면 대응을 했다. 갈등을 조율하는 데 노력했던 그간 당대표들의 모습과는 다른 대응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