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보컬 트레이닝' 해외 뚫었다…에듀테크 스타트업 주스 김준호 대표

중앙일보

입력 2021.1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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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우는 데 컴퓨터를 켜고 원격으로 수업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렵다. 음악 교육은 그 정도로 대표적인 비대면 영역이다. 입시 교육으로 가면 정도가 심해진다. 교수에서부터 강사까지 다양한 수준의 선생님을 직접 만나 레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다 보니 비대면 수업이 더 어렵다. 입시를 위한 레슨을 하는 선생님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 있어, 지방에 살면 서울을 오가는 게 일상이 된다.
 
김준호 주스 대표는 이런 어려움을 직접 겪었던 사람이다. 음대를 나온 그는 강원도 홍천 출신으로, 입시 기억의 8할은 버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길에서 버린 시간이 아까웠다. 디지털로 음악 교육을 바꿔보겠다고 생각한 건 그래서다.
 

김준호 주스 대표는 스타트업 창업자로는 드물게 음악을 전공했다. 그가 다른 많은 시장을 두고 음악 교육 시장에 천착한 건 그래서다.

 
“입시 음악 교육은 수요의 절반이 서울과 수도권 외 지역에 있어요. 개별 수요는 작지만, 이걸 모으면 시장은 있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서울 안에서도 이동하려면 기본 1시간은 걸리니까요. 1:1 레슨을 디지털화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거죠. ”
 
올 2월 론칭한 주스의 대표 서비스 씨썸(Cissum!)은 그렇게 탄생했다. 학생과 레슨 가능한 교사를 매칭해 수업하게 해주는 스튜디오형 플랫폼이면서 동시에 모바일을 활용해 학생이 스스로 연습하고 인공지능(AI) 기반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학습관리시스템(LMS)도 제공한다.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만 씨썸을 쓰는 건 아니다. 다양한 오디션이 늘면서 보컬 트레이닝 시장도 커졌다.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이 어려워지면서 이 시장 수요도 씨썸이 흡수했다. 김 대표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대중가요 시장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며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보다 10배 많다”고 말했다. 
 
최근엔 해외 사용자도 생겨났다. K팝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해외에서도 국내 보컬 트레이너를 찾는 수요가 생긴 덕이다. 씨썸의 누적 사용자가 1만 명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다.
 
올 9월 론칭한 ‘안녕 도도’는 씨썸의 문제의식을 더 밀어붙인 결과다. 입시 위주의 음악 교육 시장보다 더 큰 영유아 음악 교육 시장을 노렸다.
 
“영유아 음악 교육 시장 역시 소규모 학원 중심으로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는데요, 교육 콘텐츠만 잘 만들면 디지털화가 훨씬 빠르게 이뤄질 겁니다. 음악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 지역이나 제3세계에서 교육 격차를 줄이는 역할도 할 수 있고요.”
 
안녕 도도 앱에는 리듬, 선율, 음색, 셈여림, 빠르기, 화음 등 6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각각의 개념을 배울 수 있는 동영상과 게임 등의 콘텐츠가 담겼다. 아이들의 활동 내용에 따라 AI가 다음 교육 콘텐츠를 추천해줘 교사의 도움이 없이도 아이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2019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에 참가한 김준호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의 모습. 주스의 서비스는 국내에서만큼이나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인다. 특히 음악 교육이 주로 가정에서 이뤄지는 동남아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김 대표는 생각한다.

 
안녕 도도 서비스는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빨리 반응이 왔다. 론칭도 하기 전, 올초 캐나다 시장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투자사 중 한 곳인 카이스트청년창업지주의 소개로 캐나다 연방정부와 협력하고 있는 스프링벤처스그룹을 만난 게 계기였다. 캐나다에서는 국내와 달리 음악학원이 아니라 초등학교에서 관심을 보였다. 김준호 대표는 “캐나다 정부에서 음악 수업의 교보재로 안녕 도도를 채택하고 싶어해 캐나다 교육 과정에 맞게 콘텐츠를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며 “제한된 상황에서 이미 베타 서비스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주스는 캐나다 벤쿠버에 북미 법인 설립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 창업가로는 드물게 음악을 전공했다.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머니가 편찮으시면서 가업인 식당을 물려받은 게 계기가 됐다. 식당을 커피전문점으로 바꿔 적잖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좀 더 의미 있는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게를 가족에게 맡기고, 정부 지원으로 실리콘밸리에 갔다. 2016년 일이다.
 
“에어비앤비를 방문했는데, 그때 음악 교육 시장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에어비앤비가 미국 전역에 흩어진 숙박 수요를 모아 글로벌 회사를 만들었듯 음악 교육 수요를 모으면 의미 있는, 그리고 작지 않은 사업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누군가는 김 대표에게 “커머스나 금융 같은 큰 시장을 두고 왜 음악 교육이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창업가들이 풀고 싶은 문제가 하나가 아니라는 건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각각의 이유로 각자의 문제를 푸는 이들 덕에 사람들의 삶이 전방위적으로 바뀌는 게 아닐까. 주스의 도전이 반가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