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포화상태다. 더는 환자를 받을 여유가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612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치를 경신한 25일, 소위 빅5라 불리는 서울 상급종합병원에서 일제히 터져 나온 소리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이들 병원의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현황을 보면 남은 병상을 손에 꼽을 정도로 환자들이 가득 찬 상태였다. 여력을 보면 서울대병원은 병실 36개 중 4개, 서울아산병원은 41개 중 12개, 삼성서울병원은 31개 중 2개, 서울성모병원은 20개 중 2개, 세브란스병원은 37개 중 1개만 사용 가능했다. 전체를 합쳐도 21개 병상밖에 남지 않았다.
"하루 확진자 1만명까지 대비"라더니 4000명 나오자 비상
당초 정부는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행 초기만 해도 일일 확진자 5000~1만명까지 예상하고 대비했다고 밝혔지만 시행 4주 만에 위기를 맞았다. 대비했다고 한 5000명보다 적은 4000명 전후의 확진자에도 벌써 의료 대란이 이어지고 있다. 전날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그동안 1% 중반대 정도의 위중증 환자 발생률을 보였는데 최근에 와서 2% 중반대까지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종전의 확진자 규모로 따지면 거의 5000명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위중증 환자가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환자도, 일반 중증 환자도 병원 전전
비상이 걸린 건 코로나19 중환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환자가 많아지는 만큼 일반 중증 환자를 위한 병상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이날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있던 50대 식도암 환자는 체내 칼슘 수치가 정상보다 6배 이상 오르는 고칼슘혈증 증상이 나타나 서울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3시간 넘게 대기해야 했다. 이 환자는 사설 구급차에서 대기하면서 섬망 증상까지 왔지만, 병원 측은 “당장 병상이 없어 대기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지난 23일엔 심장질환을 앓던 70대 여성 이 증상이 악화했으나 병상이 나오길 기다리다 내 자택에서 심정지로 사망하는 일도 생겼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회장은 “암 환자의 경우 어차피 다른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아서 다니던 병원에서 계속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환자를 위해 확보되는 숫자만큼 중증ㆍ응급 환자가 들어갈 병상이 사라지게 되는 건데 정부가 이에 대한 대책은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다”라며 “환자들과 생명과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계량적ㆍ수치적으로 따지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라고 비판했다. 실제 서울의 한 상급 종합병원 관계자는 “응급실에 코로나19 환자들이 들어와 있을 경우 다른 중증 환자들은 진입을 못 하니 다른 병원으로 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 “거리두기 강화부터” vs “병상 효율화 필요”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식당ㆍ카페 이용자를 백신 접종 완료자로 제한하는 등의 방역 강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당장 코로나19 중환자 수용을 위해선 전담병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일종의 허브 병원을 하나 지정해서 중환자들을 집중 치료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며 “의사 인력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데 의료진들을 돌아가면서 파견하는 형식으로 운영하게 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다만 방역을 강화하는 건 적절치 않은 처방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지금 위중증 환자가 증가하는 건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 병원 등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며 “거리두기를 해서 식당·카페가 문을 닫는다고 해도 이런 감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은 중환자실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경증 환자들을 준중환자실이나 입원 병실로 내리면서 병상 활용 효율을 높이는 한편, 그 사이에 중환자를 위한 병상과 인력을 늘려 장기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