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로 윗집 초등학생 위협까지
층간소음이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지만, 살인이나 흉기 협박으로까지 번질 지경이면 얘기가 다르다. 한국은 아파트나 다가구주택 등 공동주택 거주 비율이 70%에 육박한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데,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고 외부 활동이 줄면서 층간소음 갈등도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웃 간에 이사 떡 돌리던 풍습은 옛말이 됐는데, 층간소음 때문에 위아래 집 사이에 신경전을 벌이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은 이사 간 아파트 아랫집에 또래 아이가 있거나, 또래 손자를 둔 노부부가 살면 행운이라 여긴다. 어느 정도 이해해줄 거라는 기대에서다. 반면 소음이 심하다는 의견을 정중히 전해도 변화가 없다고 느낀 아래층 사람들의 성토도 거세다. 자녀가 거실에서 뛰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층간소음에 무감각하다는 비판을 받은 연예인이 한둘이 아니다.
이쯤 되면 층간소음 문제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소음을 줄이려 매트를 까는 집이 많은데도 아랫집 찬장이 흔들리고 소음이 줄지 않는 이유가 있다. 아파트 구조가 한몫한다. 분당·일산 등으로 대표되는 1기 신도시 건설 때부터 국내 아파트는 ‘벽식 구조’를 택했다. 아파트의 내력벽이 하중을 떠받치는 구조인데, 공사비가 저렴하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경제 성장 속에 부족한 주택을 이런 형태의 아파트로 200만호가량씩 지어왔다.
하지만 벽식 구조는 위층 소음이 벽을 타고 아랫집으로 전달되는 부작용이 있다. 심지어 벽으로 연결된 다른 층의 영향까지 받기 때문에 아파트 한 집에서 공사하면 같은 동의 떨어진 집까지 울린다. 요즘 지어지는 아파트 역시 겉모습만 멋져졌지 대부분 벽식 구조다. 서울 평균 아파트값이 12억원이라는데, 층간소음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기둥·보 '라멘 구조'에선 소음 감소
층간소음을 줄일 수 있는데도 벽식 구조가 일반화한 것은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건설사들이 라멘 구조를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종시에 수명이 오래 가는 장수명 시범아파트를 선보인 국토교통부는 비장수명 아파트와 비교해 공사비가 3~6% 정도만 올라간다고 밝혔다. 빌라는 라멘구조로 짓는 경우가 많지만 건축비를 아끼려 슬래브 두께를 얇게 하는 바람에 층간소음을 잡지 못한다고 한다.
건설사 동참 이끌 정책 세워야
층간소음 갈등을 중재하는 기구가 있지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이들이 많다. 소음을 측정할 때 윗집에 미리 통보하니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흉기 난동을 제압하지 못한 경찰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소음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파트 내 자율조정기구를 만들어 특히 조심할 시간대를 정해 공유하는 등 주민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정책 결정자들은 층간소음을 시급한 삶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칼부림까지 나 인명이 희생될 정도라면 이보다 더 화급한 사안이 어딨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