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와 특별한 연고도 없이 ‘이순난 장학기금’의 주인공이 된 이씨는 “소원을 풀었다”고 했다. 기부를 결심한 이후 “아파서 해결을 못 하고 (세상을) 떠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을 매일 했다고 한다. 이씨는 “얼마 전에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도 내가 ‘기부는 어떡하냐’고 헛소리를 했다더라”며 웃었다. 이씨는 지난 23일 오세정 서울대 총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93세 해녀 할머니 기부 보고 결심
서울대를 기부처로 정한 이유에는 배움에 대한 이씨의 소망도 녹아있었다. 학교라는 곳을 다녀본 적이 없다는 이씨는 “서울대는 최고로 똑똑한 학생들만 가는 학교이니 여기서 국가에 이바지할 인재를 키워주면 한다”고 했다. 기부금이 잘 쓰일 수 있는 곳인지도 중요한 기준이었다. 이씨는 “제대로 관리하는 양반들이 있어야 한다”며 “아들이 서울대 발전기금 사이트를 보더니 잘 돼 있다고 해서 여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평생 장사로 돈 모아 가족 부양
떡 장사에 이어 옷, 화장품 등을 팔았다. 이씨는 “화장품 장사를 하면서 빚을 갚고 그때부터 돈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정작 나는 (화장품을) 아무것도 안 바르고 다녔고 먹고 싶은 것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물티슈를 어떻게 한 장을 다 쓰냐”며 “가위로 4등분 해서 잘라서 사용한다”고 했다.
절약이 몸에 뱄다는 이씨는 “남들은 혼자 살아도 수도세가 1만원 나온다는데 나는 3000원 나온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다. 그렇다고 더럽게 사는 건 절대 아니다”며 웃었다. 24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인터뷰 자리에 놓인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처음 먹어보는 음식인데 맛있다”고 했다. 이어 “음식은 남겨본 적이 없다. (음식을) 남기는 게 제일 싫다”며 접시를 비웠다.
아들들 “우리 어머니지만 존경스럽다”
이씨는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의 편지가 집으로 갈 수도 있다는 발전기금 측 말에 “아파트 우체통에 편지가 있으면 사람들이 다 보는 것 아니냐”며 “많은 액수도 아닌데 부끄럽다”고 겸손을 잃지 않았다. 이어 “(기부금이) 잘 쓰이면 내가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