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도 선수처럼, 활동해야 성장”

중앙일보

입력 2021.11.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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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게르기예프가 23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2년 전 러시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내한했던 그는 24일 같은 악단의 현악 앙상블과 함께 한국 공연을 한다. [사진 인아츠프로덕션]

“한국 공연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공연 2~3주 전 들었다.”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68)가 한국에 왔다. 23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빈필하모닉과 10회 공연을 한 후 아시아 국가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불분명했는데 서울에서 공연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게르기예프는 지난 해 빈필과 한국에서도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로 취소됐다.
 
이번 서울 공연은 자신의 악단인 ‘마린스키 스트라디바리우스 앙상블’과 함께한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 중 현악 수석 단원들을 중심으로 한 단체다. 2009년 게르기예프가 창단했으며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르기예프의 말처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내한 공연은 긴박하게 결정됐다. 단원 40여 명이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지정한 격리시설에 입소한 후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았으며, 전담 주치의를 두는 등의 방역 수칙을 지키는 조건으로 2주 자가격리를 면제받았다. 체류 기간을 줄이기 위해 24일 하루 동안 오후 2시, 오후 8시 총 두 번 무대에 오른다. 두 공연의 연주 곡목은 한 곡(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을 제외하면 모두 다르게 구성됐다.


게르기예프는 한 해 150회 이상 전 세계 지휘대에 서는, 가장 바쁜 지휘자 중 하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객원 수석, 런던 심포니 음악감독을 거쳐 현재 독일 뮌헨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다. 하지만 게르기예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 악단은 마린스키 극장이다. 그는 1988년부터 이 극장의 예술감독을 맡아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막 공연 등 혁신적 프로그램으로 러시아 문화계를 부흥시켰다.
 
그는 팬데믹으로 마린스키 극장의 무대를 지속할 수 없었을 때도 새로운 공연 기획을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마린스키 극장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하지만 아티스트들이 공연할 수 없을 때도 새로운 작품을 준비했다. 결론적으로 팬데믹 기간에 수많은 오페라, 발레, 교향악 무대,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 준비됐다. 최대한 창의적으로 팬데믹 상황을 활용하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한 알렉세이 레베데프 ‘러시아 시즌’ 준비위원장은 “게르기예프의 리더십 덕분에 팬데믹 봉쇄 상황에서도 모든 아티스트가 직장을 잃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시즌’은 푸틴 대통령의 제안으로 2017년 시작한 국제적 문화행사로, 레베데프는 이 행사의 총책임자다. 게르기예프의 서울 공연도 ‘러시아 시즌’의 일환으로 열린다.
 
게르기예프는 “한국의 문화적 전통이 오래된 것을 알고 있다. 러시아 또한 강한 문화 전통을 가지고 있다”며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활동을 해야 한다. 예술가들은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성장을 위해 활동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에 대해 “젊은 연주자들이 많고 실력이 우수하다”며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한 도시의 극장 수준을 결정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스트라디바리우스 앙상블은 24일 서울 잠실의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한다. 오후 2시 공연에서는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오후 8시 공연에선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를 들려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