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틈틈이 새 나오는 미국 측 반응은 영 딴판이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17일 한·미·일 외교차관협의를 끝낸 뒤 "미국은 한·일과의 협의에 매우 만족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종전을 선언하는 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엔 끝내 답하지 않았다. 또 지난달 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종전선언과 관련해 "우리(한·미)는 정확한 순서·시기·조건에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양국 간에 이견이 있음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미가 산통 끝에 종전선언의 조건과 내용 등에 합의하더라도 이를 북한이 받아들일지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이런데도 현 정권이 미련을 못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대선을 앞두고 남북한 간 전쟁이 끝났음을 공식 선언함으로써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인식을 주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착시에 불과하다. 북한은 그간 핵폭탄 하나, 미사일 하나 없애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올 들어서는 극초음속 미사일, 소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첨단무기의 고도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북한의 위협이 날로 커지는 판에 무슨 평화가 찾아왔단 말인가.
하지만 종전선언이란 대못을 박는다고 비핵화가 손톱만큼이라도 이뤄질 리 없다. 종전선언을 남북대화, 나아가 비핵화의 입구로 삼겠다는 게 현 정부의 복안이다. 하지만 그간의 행태로 보아 북한이 맨입에 남북대화에 응할 가능성은 적다. 경제 지원이든 뭔가 충실한 대가를 바랄 게 뻔하다. 대화 채널이 열려도 비핵화와 관련된 논의는 거부할 공산이 큰 건 물론이다.
이럴 바에야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 다음 정권이 종전선언 카드를 제값 받고 쓸 수 있도록 아껴두는 게 옳다. 현 정권도 박근혜 정권 말이던 2017년 3월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THAAD)체계 배치가 강행되자 대못박기라고 비판하지 않았는가. 임기 말에 종전선언에 매달려 외교력과 시간을 낭비하느니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게 낫다. 차라리 다음 정부가 홀가분하게 시작할 수 있게 결자해지 차원에서 한·일 관계를 화끈하게 해결하고 퇴장하는 건 어떤가. 당장은 욕먹을지라도 길게 보면 칭송받을 일이 틀림없다.